나는 울산으로 시집와서 너무 외롭고 쓸쓸한 나머지 울산성당 언니를 통해 첫 아이의 돌 때쯤 처음으로 레지오에 입단하였다. 묵주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는 아기띠에 첫째를 안고 레지오를 다녔다. 이유는 딱 한 가지, 타지에 와서 그저 사람이 그립고 외로워서였다.
그런데 레지오 생활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신랑이 창원으로 발령 나서 또 이사하게 되었다. 가음동성당에서 수녀님의 추천으로 나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그 길을 통해 다시 5년 만에 레지오에 입단하였다.
처음 레지오에 입단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둘째가 태어나고 성모님께 온전히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성경 구절 중 신명기에 나오는 ‘쉐마 이스라엘’을 참 좋아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그렇게 나는 무슨 일이든 1순위로 하느님으로 섬기며 살았다. 자식들을 통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고통을 주셨고, 매일 밤 눈물로 지새워도 그 고통 또한 하느님, 예수님께 봉헌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친정어머니께서 세례를 받으셨다. 고집이 강하던 어머니는 교리공부도 열심히 하시며 이제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이었다. 이 모든 것이 성모님의 이끄심, 어머니! 엄마의 이끄심인 거 같다.
레지오 입단 후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마흔, 40이라는 나이가 되었고, 그 40이라는 숫자도 뜻깊게만 느껴진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듯 지금 나도 40년 동안 어쩌면 광야에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성모님의 신심처럼 다시 겸손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한 해인 것 같다.
첫째는 9살 아들, 둘째는 6살 딸이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아이들 키우면서 봉사도 많이 한다며 칭찬과 격려를 해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맘속엔 작은 교만이 있었다. 아마도 예수님 성모님은 아실 거다. 그러고 또 회개하고 교만했다. 나에게 묵주가 없었다면 회개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묵주기도가 제일 아름답고, 평생토록 바칠 수 있는 기도이다. 그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는 울기도 하고, 좌절도 하며 애원하였다. 성모님의 전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묵주기도인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 삶에서 묵주기도가 더 간절하지 않았을까….
성모님의 이끄심과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기도와 희생은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기적이다. 차근차근 나를 레지오로 이끌어 주산 성모님, 그리고 우리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 단장님, 부단장님, 서기님, 회계님, 단원들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금 내가 다니는 가음동성당은 재건축으로 임시 성전에서 생활 중이다. 여러 가지 힘듦과 불편함이 있지만 그것 또한 모든 교우가 한마음으로 봉헌하고, 기도 때문에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재건축으로 많이 지쳐있는 가음동성당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교우들이 잠시나마 이 글을 읽고 쉬어가길 하는 마음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신자분들, 염치없지만 재건축을 앞둔 가음동성당을 위해 기도 부탁드려요. 나의 엄마! 나의 성모님! 나 오늘도 잘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