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성모님의 이끄심
정득용 하상바오로 대전교구 입장성당 평화의 모후 Pr,

아버님이 구정에 돌아가신 지 벌써 9년이 지났습니다. 명절이라 지인들에게 부고를 전하기가 난감했습니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혼자 오셨고, 독자라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자니 장례식장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이 컸고, 그중 초등학교 친구들이 발인과 화장 장지까지 지켜주었습니다. 끝까지 도움 준 친구 여섯 중 다섯이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저는 천주교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세례받지 않았는데 친구들의 큰 도움을 받고 나도 교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본당에 전화했더니 예비자교리 중인데 나오라 합니다. 다음 날 시간에 맞춰 갔는데 신부님이 시작한 지 한 달 넘었으니 다음 예비자교리 때 다시 오라 하십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늦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후 3일 되는 날 교육분과장님이 술 한잔하자 해서 따라갔는데 여러분들이 계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저를 인도한 분이 단장님이시고, 자리한 분들이 단원이셨습니다. 성모님 신심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레지오에 가입한 지 벌써 8년이 넘었습니다. 가입 후 분단이 있어 석 달 만에 보고서 작성도 모르는 채 서기가 되었고, 단장님이 6년간 봉사를 하시어 얼떨결에 제가 단장이 되어 2년째 맡고 있습니다. 꾸르실료를 먼저 다녀온 서기님이 단장님은 꼭 다녀와야 한다 해서 견진성사를 받고 곧바로 신청해서 좋은 체험을 하였고, 마지막에 “달려, 달려”하는 가운데 발표도 열심히 했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에는 개신교 유치원 교사였고 결혼하고서는 절에 다니셨던 어머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신부님과의 갈등으로 3년 반을 냉담하며 국내 성지 111곳 순례를 할 때 먼 곳을 갈 때는 동행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열렸는지 식사 전 기도나 식사 후 기도를 하면 손을 모으고 같이 “아멘” 해주었습니다. 
지난해 아내는 환갑이기에 자신을 위한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포하고, 제주에서 일 년을 살겠다며 떠났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 교리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고, 제주 화북성당에서 예비자교리를 신청했습니다. 
한번은 교리 교사님들이 훌륭하시다고 내려와 인사하고 식사도 하자 해서 제주에 갔습니다. 대화 중에 교사님이 부부 피정을 알려 주셨습니다. 얼마 있다가 아내가 ME를 신청했으니 또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24년 7월 제주교구에서 행복한 125차 ME 주말을 체험하였습니다.
아내의 제주 체류는 11월까지인데 세례가 12월 성탄절이라 이곳 본당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그간 배운 것과 입증할 자료들을 갖고 오면 이곳에서도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아내가 돌아와 교리를 마치면 저도 가정 성화를 이루고, 아내를 저희 Pr.에 인도할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성모님이 이끌어 주심이기에 매주 하루는 시내 성모의 집에서 급식 봉사도 하며, 항상 감사하고, 기도하며, 본당 일이라면 빠지지 않으려 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