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미리 알리는 거리의 장식도 올해는 무색할 만큼 핵전쟁의 위험은 커지고 세상은 파멸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쟁의 위협은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해 통합 생태적 신앙생활을 살아보려는 노력이 우스꽝스러울 정도입니다. 앓고 있는 지구를 살리려는 교회의 시도는 바닷가에 모래성을 쌓는 것 같습니다. 마치 세상 종말을 앞당기려고 작정한 듯이 전쟁은 확산일로(擴散一路)에 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 성인의 회칙 ‘지상의 평화’나 이 회칙의 연장선에서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 같은 공존을 위한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우리의 신앙도 힘을 잃어갑니다.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꺼져가는 심지에 다시금 불을 붙이며 주님의 탄생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닮는 신앙생활
지구상의 어두운 그림자는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성모님의 군단이 겪고 있는 시련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세상 안에 들어오시어 세상을 변화시키셨듯이 레지오 단원들도 각자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을 새롭게 다짐합시다.
사회 문제와 신앙생활의 문제는 별개가 아니며, 올바른 신앙생활의 실천으로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종교의 변화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에 변화를 일으키고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모님의 군단은 자신의 활동이 종교 생활의 일부로 한정되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해 레지오가 창설될 때 체험했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자각을 새롭게 합시다.
성모님의 군단은 갖가지 곤경에 처한 신자들에게 봉사할 때 단원들이 봉사하는 대상이 된 사람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성모님의 마음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단원들 각자도 봉사 받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성모님의 사랑이 전달되는 느낌이 들도록 사도직 활동을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실천하였습니다.
몸의 각 지체가 서로 결합하여 유기적으로 활동함으로써 한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듯이 레지오 단원들도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성모님의 군단으로서 성모님의 모성애를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전례 시기에 어울리는 신앙생활에 충실할 때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조금씩 더 깊이 체험하고 닮아가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한 해를 주기로 펼쳐, 신자들이 “구속의 신비를 기억하며, 자기 주님의 풍요로운 힘과 공로가 모든 시기에 어떻게든 현존하도록 그 보고를 신자들에게 열어, 신자들이 거기에 다가가 구원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한다.”(전례 헌장 102항)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통해서만 아니라 탄생에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알리고, 몸소 실천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성모님의 군단도 특정한 사도직 활동에 치중하던 관행을 버리고 단원들의 신앙생활 자체를 통해 주님의 현존이 드러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드러나는 신앙생활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외친 것을 실천으로 입증하는 신앙인
교회는 세상이 듣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듣지 않기에 더욱 희망하며 외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생명의 길을 알아듣고, 또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수용할 때까지 세상에 외친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내가 한 것을 보고 믿어라”(요한 14,11 참조)라고 하신 것처럼, 교회는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사실 세상이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세상이 경험하기에 교회가 좋은 표양을 보이지 못했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올바른 소리를 외쳐야 하는 예언자의 역할 못지않게 과거의 나쁜 표양을 보상하기 위해 두 배로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이 실천하도록 외치는 것을 교회도 실천하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만큼 세상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외치는 만큼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성모님의 군단도 그리스도의 몸을 돌보듯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의 활동은 자신이 성화하는 만큼 효과를 나타냅니다. 교본은 레지오 단원의 성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레지오 단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할 때에는 자신이 지닌 은총만큼만 전할 수 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제8장,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