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2
대림과 성탄의 상징들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12월에는 곳곳에서 성탄 장식과 상징들을 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대림환이나 호랑가시나무로 만든 장식, 그리고 크리스마스 조명이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지요. 하지만 성탄 장식들이 널리 퍼진 만큼 그 뜻을 이해하고 취지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산타클로스가 성탄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나 싶은 요즘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는 목동의 마음으로 약한 이웃들을 찾고 애덕을 실천하는 대신, 이국적인 휴일 정취를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성탄 상징들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겠습니다.

1. 대림환과 크리스마스 트리 
대림시기가 시작되면 제대 앞에 대림환과 대림초가 놓입니다. 대림환은 호랑가시나무 같은 상록수로 만듭니다. 늘 푸른 나무처럼 언제나 살아계신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대림환을 둥근 환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신 하느님의 속성을 드러내려는 뜻입니다. 초는 말할 것도 없이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뜻을 담고 있지요.
대림환과 함께 성탄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가톨릭 관습이었습니다. 인간이 원죄를 짓고 쫓겨나기 전에 낙원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있었다지요(창세 2,9). 죄지은 인간이 하느님을 피하다가 낙원에서 쫓겨난 이래, 인간이 낙원의 나무들을 다시 본다는 것은 낙원을 되찾는 일, 곧 구원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낙원을 되찾게 되었다고 알리는 것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낙원 나무의 열매를 상징하는 공 모양의 장식물을 달고, 그 열매의 달콤함을 상기시키는 사탕 같은 것으로 꾸몄습니다. 나무 아래에 선물들을 쌓아두는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곳이 낙원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이런 전통에 따라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중심으로 작고 약한 이들을 기억하며 자선을 베푸는 관습을 지킵니다. 예컨대 런던 중심 트라팔가 광장에는 1947년 이래로 해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엄선해서 보낸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됩니다. 20미터가 넘는 거목을 그야말로 강 넘고 바다 건너서 보내는 까닭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베푼 영국의 도움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국은 전쟁 기간에 먹을 것과 의약품이 없어서 위험에 처한 노르웨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원조를 아끼지 않았지요. 그 친절과 사랑에 응답해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해마다 트리를 보내고, 다시 그 트리 밑에서는 오늘도 우리들의 관심과 나눔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선 단체나 개인이 캐럴을 부릅니다. 그저 휴일 분위기 내려고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탄 정신에 맞갖게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돌아보라고 권하려는 뜻입니다.

2. 구유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치오에서 처음으로 구유를 만들었던 것이 1223년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구유를 만들었는지 생생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필요한 것 하나 갖추지 못한 그 갓난아기가 겪은 불편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황소와 나귀 옆에서 그 갓난아기가 어떻게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바람이었습니다.

11세기 무렵부터 가톨릭교회는 유럽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문을 연 대학교에서 신학은 법학, 의학과 더불어 전문직 교육의 핵심을 이루었고, 정교한 신학 논리들이 서구의 지성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게 용서를 빌 정도로 교회 권력이 큰 힘을 발휘했으며, 대성당 건축이 이어지면서 교회는 바야흐로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되어 갔습니다. 
교회의 외형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부작용도 커졌지요. 글을 배우지 못하고, 먹고살기에 바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체 높으신 분들이 라틴말로 펴내는 신학은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었고, 백성들의 초라한 집과 대비되는 거대한 성당의 위용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엄위하심은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그분의 자애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거대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있는 곳에 파리가 꼬이는 법인지라, 권력과 돈을 탐하는 이들이 교회의 얼굴을 더럽히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였습니다. 그가 만든 구유는 지극히 그리스도께서 작고 약한 이들의 초라한 일상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게 해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닮은 성인이었고, 그 마음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해주려고 구유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사실 성탄은 교회 역사 안에서 처음부터 크게 거행된 축일은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정확하게 어느 날짜에 태어나셨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수난과 부활의 신비, 곧 파스카 신비를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데, 네 복음서 중에서 마르코복음에는 성탄 이야기가 아예 없고, 요한복음에는 성탄의 의미를 신비적인 어휘로 전하는 머리말이 있을 따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파스카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서, 강생의 신비와 파스카 신비가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 사도가 필리피서에 기록한 그리스도 찬가는 강생과 수난과 부활을 하나의 노래 속에 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필리 2,6~9). 대림과 성탄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필리 2,5), 그러니까 더 낮은 곳을 향하는 겸손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