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다 은총입니다.
첫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지금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 관면 혼배를 하고 그다음 해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가정을 이루어 네 남매를 낳고 시어머니 포함 일곱 식구가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힘든 순간을 잘 넘겨 왔습니다. 집에 불이 나는 큰 시련 중에서도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묵주기도와 가정기도로 온 가족이 함께 견디어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차 안에서 묵주기도를 시작하지만 1단도 끝내지 못하고 잠을 자던 아이들이 주일학교를 마치고 성장하여 지금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성실히 다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부부의 신앙생활에 감명받은 친정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도 모두 개신교에서 개종하였고, 친정아버지도 대세를 받고 돌아가셔서 장례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몇 년이 지난 후에 시매부와 조카들도 세례를 받아 모두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둘째 딸도 교우 집안에 시집가서 저와 마찬가지로 네 남매를 낳고 아이들과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시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걷지 못할 때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머니가 행동단원으로 있던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에 동행하면서 레지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모님의 군대가 되어 시어머님 선종 시 마지막 묵주기도를 함께하는 은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레지오장으로 시어머니를 천국으로 잘 보내 드렸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저녁미사 후 주회를 하는 탄복하올 어머니 쁘레시디움으로 옮겨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입단했을 때 4명으로 시작한 쁘레시디움은 초기에 출석률이 저조하여 2명이 참석할 때도 있었고, 혼자 주회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단원이 8명이 되어 활기찬 쁘레시디움이 되었습니다.
부부의 신앙생활에 감명, 친정․시댁 모두 세례받고 성가정 이뤄
우리 아이들을 소년 쁘레시디움에 가입시켜 돌보다 보니 성인 간부가 없음을 알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성인 단장을 맡아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소년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올해 1000차가 되어 축하식도 가졌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이탈하는 소년 단원들을 유지하기가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와주는 자모회 간부들도 생겨서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저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단련하신 성모님의 계획이었나 봅니다.
쁘레시디움 단장을 시작으로 꾸리아 서기, 꼬미씨움 회계, 서기를 연임하다가 지금은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레지오의 순명 정신으로 세나뚜스 회계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일을 겪는 동안 교구에서 주는 선교상, 다가정상, 3대 레지오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회 복지를 공부하게 되었고, 가톨릭 법인 종합복지관에 취업해서 나에게 맞는 분야에서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보람을 느끼며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나보다 더 오래 레지오를 한 남편과 같이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직장 생활, 가정생활, 신앙생활에 더 큰 은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문제가 생기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마다 주님은 항상 지켜 주시고, 헤쳐 나갈 지혜를 주시고, 도움을 주는 협력자를 보내 주심을 느낍니다. 눈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숨 쉬는 순간마다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감사함에 힘입어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자 다짐합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은 늘 주님께서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
<사진설명>
- 3대 가족들
- 탄복하올 어머니 Pr. 단원들과(좌) 소년 평화의 모후 Pr. 1000차 기념 주회(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