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면 참 부끄럽고 유수 같은 세월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어느 날 강론에 집중하는데 옆자리 자매님이 부스럭부스럭 사탕 껍질 벗기시는 소리에 ‘에고, 사탕은 집에서 드시고 오시지 하필 미사 시간에…’ 갸우뚱했었지요. 성당 가는 길에 종종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계시는 다른 자매님을 뵙고 “아, 어디 가시게요?”하고 여쭈면 “아니 다리가 아파서 조금 쉬었다 가려고. 먼저 가게나.” 하셨어요. ‘에고, 고작 걸어서 20분 거리를 요래 해찰하고 가시다니…’ 갸우뚱했었지요.
멋쟁이 한 자매님은 성당에 원피스 등 정장을 입고 오셨어요. 그 옷차림에 납작한 단화를 신고 오실 때면 ‘에고, 구두를 신으시면 패션의 완성도가 훨씬 고급스러우실 텐데…’ 갸우뚱했었지요.
하루는 깔끔이 자매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하얀 눈곱이 살짝 보여 신경이 쓰였어요. ‘에고, 나오실 때 거울도 안 보셨나…’ 갸우뚱했었지요. 나눔 잔치를 하는 날 천사 같은 자매님은 연신 김치와 깍두기 국물만 떠드시니 ‘에고, 맛있는 줄기와 아삭아삭한 무는 드시지 않고 왜 국물만 드시나…’ 갸우뚱했었죠.
언니 같은 어르신은 성당에 오시면서 성가 책이 무겁다고 작은 배낭을 메고 오십니다. ‘에고, 지난번에 따님이 사준 예쁜 가방은 어디에 두고 이리 소풍 가시는 차림으로…’ 갸우뚱했었죠.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칠순을 훌쩍 넘기고 보니 내 생각과 상관없이 자연스레 어르신의 반열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사 시간에 목이 근질근질하여 매우 불편했어요. 나오려는 기침을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갑자기 “에취!” 하며 재채기가 나오더니 잔기침이 계속 나왔습니다. ‘에고, 이걸 어쩌나 강론 중에…’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데 앞에 자매님이 얼른 사탕 하나를 건네주셨어요. 급한 마음에 바스락바스락 소란을 피우며 사탕을 입에 넣었습니다. 계속 마른기침을 쿨럭쿨럭하고 있는데 뒤에 계신 자매님이 따뜻한 물을 보온병 뚜껑에 담아 주셨어요. 얼른 물을 한 모금 넘기니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신부님과 교우분들께 죄송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오래전 갸우뚱했던 일이 생각나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땐 정말 몰랐어요.
어느 날 회합을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데 한 자매가 티슈 한 장을 건넸습니다. 입 주변을 닦았더니 “아니, 언니 눈!” 그럽니다. 얼른 거울을 꺼내 보니 어쩌면 좋아! 하얀 눈곱이 끼어있었습니다. 계면쩍어 “에이고 요놈의 꽃가루 때문에.” 탓을 하며 얼버무렸지요. 옛날에 거울도 안 보고 나오셨을까 했던 내 마음이 생각나서 또 죄송했습니다.
요즘 무릎이 시큰거리니 예쁜 옷을 입고도 구두 신기를 망설이고, 가방 무게를 줄이려고 성가 책은 성당에 두고 다니며, 잇몸이 부실하니 국물과 부드러운 음식만 손이 가고, 성당 가는 길이 멀 땐 남보다 일찍 집을 나서 갖은 해찰을 해가며 천천히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오래전 갸우뚱, 오해했던 일들을 제가 다 따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지낸 추억이 많아 어르신들을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어보니 알겠더군요.
이제는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곤란한 일이 생겨도 여간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습니다. 일단 너그럽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지요.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잖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야.’ ‘비난받을 행동은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