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자주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심호흡을 하곤 한다. 그러면 그 순간, 이 지구의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잠시 머물곤 한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쁜 이 세상살이에서 내 입술조차 “바빠서요”라는 말이 쉴 사이 없이 나오고 있음을 의식한 이후로 의식적으로 잠시 멈추는 것이다.
그러면 짧은 5분이 태초의 시간과 만나고, 지금 전쟁 중인 나라들에서 울부짖는 어머니들을 만나고, 기후 변화로 삶터를 잃고 길을 떠난 사람들과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피조물들의 눈빛을 만나고, 돈도 물질적 풍요도 빵과 고기도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의 후손들도 만난다.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과 탓을 돌릴 수 없는 이 시간에 잠시 멈추고 저들의 숨죽인 울음을 마음속에 담으며, 사사로이 오고 가는 감정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몇 년 전 독일에서 손님이 우리 공동체를 찾아오셨다. 공동체 수녀님의 친구가 독일인과 결혼하셔서 독일에서 사시다가 잠시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친구도 만날 겸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셨다. 땅을 돌보며 사는 수녀들을 보며 피터는 너무 좋아했다. 격식 없는 옷, 일명 몸빼를 입고 일하고 있는 우리들이 편해서였는지 피터는 고백성사하듯 자기 신앙생활의 부족함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였다. “저는 요즘 미사에 나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다른 활동도 하지 않고 있어요. 너무 바빠요. 그렇지만 저의 아내 카타리나는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피터의 이러한 말을 듣고서 우리는 그에게 아무리 바빠도 그러면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피터는 인자한 미소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대화가 한참 오가던 중 피터는 눈을 반짝이며 이러한 말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교황님께서 ‘난민은 사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교황님께서 이렇게 이주민과 난민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에 감사드려요.” 이 외에도 피터는 교회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피터의 말을 듣고 우리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가 성당에 자주 나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그가 성당에 자주 나가도록 설득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 질문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체를 모시고도 공허해하고, 또한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지 못하는 우리에 비해 피터의 ‘하느님께 질문하는 신앙’은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우리에게 부족한 신앙의 자세를 피터에게서 배우며, 또한 이것이 위기에 처해있는 세상의 변화에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환경문제를 다루려면 영적, 문화적 변모가 필요해
미국의 법학자이자 UN의 프로그램 개발자인 거스 스페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저는 최우선 환경문제가 생명 다양성 손실, 생태계 붕괴, 기후 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30년 동안 잘 연구하면 이 문제들을 다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틀렸습니다. 최우선 환경문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과 무관심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다루려면 영적, 문화적 변모가 필요합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거스 스페스는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적이고 문화적인 변모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영적이고 문화적인 변모는 단지 올바른 행동 한 번이 아니고, 단지 만족하는 활동이나 기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움직이고,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을 말한다.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삶 안에 적용하게 되는 움직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관심의 문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에게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피터는 비록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전체 교회가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 묻고, 그 교회 안에서 오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묻는 신앙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이 위기의 때에 우리 자신이 교회의 실재인 하느님 백성이라는 자의식 안에서 어떤 질문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회가 위기의 시대에 떠맡아야 할 특별한 역할이 있다면, 그 백성에게 본연의 영혼을 일깨워주며 공동선을 존중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상기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Let us Dream, p.240)
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12월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예수님 곁에 있기를 정말 원하는가? 언젠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 서울의 어느 큰 성당 관리장 님께서 기도하고 나오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우리 성당에도 예수님이 오실까요?”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