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활 중 어느 날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밖에서 그분을 기다렸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하고 반문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흔히 이 대목을 근거로 해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신심과 신학을 과도한 것이라 비판한다. 언뜻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리아의 모친성을 경시하거나 부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만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모 마리아와의 혈연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육신적이고 혈연적인 차원보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충실하게 따르는 내적이고 질적인 차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새로운 동반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렇듯 ‘하느님 나라’ 안에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의 새로운 가족관계는 교회론적이며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선포와 함께 새로이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공동체이다. 이는 세상의 기존 질서와 대조되는 새로운 복음적 가치를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예수님께서는 혈통을 부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혈연관계에만 집착하는 혈통주의를 배격하신다. 혈통주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유유상종의 배타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2-33.36)
맹목적 혈통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굳게 닫혀 예수님의 참 사명과 정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셨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2-3)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육체적 혈연관계를 넘어서 하느님 나라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새로운 가족관계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형제자매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은총과 구원의 실재에 이르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드러내
우리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는 예수님의 반문과 관련하여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하며 충실하게 응답한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방문을 맞이해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외치는 소리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마리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사신 분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맞아,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응답하였다. 또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공생활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기적,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 성령 강림을 통한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는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였다.
앞서 언급한 예수님의 반문은 마리아의 모친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모친성을 더 높고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며 통합시킨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마리아는 혈연관계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전망 속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어머니시라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마리아는 이렇듯 성실한 순종과 온전한 의탁으로 인류 구원의 거룩하고 위대한 역사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교회 역사상 제3차 보편공의회였던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였다. 이 호칭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모성은 육신적이고 혈연적인 차원을 넘어, 전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드러낸다. 이 일치는 마리아의 순명과 겸손 어린 응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만남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