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레지오 단원의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서울대교구 대방동성당(주임신부 박경근 아우구스티노) 천상 은총의 어머니 Cu. 김순자 안나 단장(63세)을 만났다. 그녀는 평범하게 레지오 활동을 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탔던 김순자 안나는 종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근처 교회를 찾았지만, 매번 이상하게도 교회가 텅 비어 있어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고향의 풍경 속에 있던 성당과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아왔던 성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가까운 창동성당을 찾아가 두 번이나 예비자 교리를 들었지만 세례를 받지 못했다.
결혼 후, 그는 군인 남편을 따라 전라도 장성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짧게는 2~3일, 길게는 보름 정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서 젊은 새댁으로 외롭고 무서운 시간을 보내던 그의 발걸음은 다시 성당으로 향했고, 장성성당에서 새롭게 예비자 교리를 시작해 1988년에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 후, 단체 가입이 의무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대모님이 김순자 안나를 레지오로 이끌어주었다.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그에게 레지오 활동은 기쁨과 축복으로 다가왔다. 대모님을 따라 환자 병원 방문, 상갓집 연도와 봉사, 그리고 작은 회합실에서 나이 지긋한 단원들과 함께 드린 묵주기도는 그의 외로움과 무서움을 날려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36년의 레지오 활동은 김순자 안나의 신앙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김순자 안나는 외짝 교우 생활을 하면서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덕분에 남편도 자연스럽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현재 남편도 대방동성당 세기의 승리자이신 모후 Cu. 단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죽음 앞에서 봉사하는 삶 간절히 기도
남편의 군 생활로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다 보니, 9곳의 성당을 옮겨 다녔으며, 군 성당에 레지오 Pr.이 없을 때는 민간 성당을 찾아 레지오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군 성당에서는 반장을, 민간인 성당에서는 Pr. 간부를 맡아 봉사하게 되었고, 반장이나 구역장 역할도 순명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돌아가면서 맡았다.
지금은 대관령성당이지만, 그가 다닐 때는 횡계공소였다. 성당으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레지오 단원들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판매할 수 있는 물품들을 다 팔고, 김치를 천 포기씩 담가 판매했다.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활동했지만, 대관령의 냉대 습윤 기후로 인해 천식이 왔고, 병원의 오진으로 결핵약을 복용하다 부작용으로 가슴에 물이 차, 중환자실에서 한 달가량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고,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후로도 여러 번의 사고가 있었지만, 레지오 단원들의 기도와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보살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2007년 3월, 남편이 군 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직장에 입사하면서, 그들은 현재 대방동성당에서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순자 안나는 전출을 갈 때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Pr.을 찾아가 활성화시킨 후, 다시 어려움을 겪는 Pr.으로 이동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이를 레지오 단원의 순명이라 여겼다.
천상은총의 어머니 Cu.는 9년 전 루르드의 성모 Cu.에서 13개의 Pr.을 받아 분단된 Cu.이다. 그중 2개는 군 성당 Pr.이었고, 1개는 호도만을 가지고 왔다. 각 Pr.이 단원들의 고령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김순자 안나는 간부들을 파견해 안정시켜 나갔다, 얼마 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 상급의 지시에 따라 카카오톡과 화상 회합을 진행하며, 힘들어하는 단장들과 간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김순자 안나는 자신이 먼저 인사하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연락하며, 힘든 일을 먼저 맡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위기의 Pr. 단원 모집으로 정상화
팬데믹이 지나고 점차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상급의 지시에 따라 장기 유고 중인 단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위태로운 Pr.과 해체된 Pr.이 생기게 되었다. 군 성당의 2개 Pr. 중 하나는 단원 부족으로 해체되었고, 나머지 1개의 Pr.의 호도는 본당으로 가져왔다. 김순자 안나는 직접 그 Pr.으로 이동해 단원들을 모집했고, 정상화했다. 이미 Cu. 분단 당시 호도만을 가져와 Pr.을 만들었던 경험 덕분에 그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천상은총의 어머니 Cu.를 단단하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시기마다 성모님이 함께하셨음을 확신했고, 현재 단원들의 기도와 활동이 옛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다고 한다.
루르드의 성모 Cu.에서 천상은총의 어머니 Cu.를 분단해 Cu. 회계를 거쳐 단장으로 이끌어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대방동성당 대성전 로비에서는 둘째 주, 셋째 주, 넷째 주 9시 미사와 11시 교중 미사 전후 3개의 Cu.가 돌아가며 활발하게 단원 모집 활동을 한다. 김순자 안나는 앞으로 더 젊은 단원들을 입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레지오의 꽃은 Cu. 라는 말처럼, 김순자 안나 단장은 죽음 앞에서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그날을 잊지 않고 오늘도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은방울꽃처럼 순박한 성모님의 향기가 김순자 안나 단장에게 느껴졌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어농성지 전 단원 성지순례
-남편과 함께 성가정상 앞에서(좌) 평의원 피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