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죽음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그 시간도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한평생 하느님을 섬기다 세상을 떠난 교우들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교회법의 규정은 물론이거니와 지상에서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영적 도움을 간청하고 그들의 몸에 경의를 표하며 아울러 산 이들에게는 희망의 위안을 주는 교회의 장례식은 전례법의 규범에 따라 거행되어야 한다.”(제1176조 ②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1. 장례미사
“어느 죽은 신자의 장례식이든지 일반적으로 그의 소속 본당 사목구의 성당에서 거행되어야 한다.”(제1177조 ①항) “그러나 어느 신자든지 또는 죽은 신자의 장례식을 돌보는 이들은 다른 성당의 책임자의 동의를 얻고 또한 그 죽은 이의 소속 본당 사목구 주임에게 알리고서 다른 성당을 장례식장으로 선택할 수 있다.”(제1177조 ②항)라고 규정한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 가운데에 장례미사가 첫 자리를 차지한다. 장례미사는 법규범이 지시하는 모든 것을 지키면서 의무 대축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대림·사순·부활 시기의 주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드릴 수 있다(미사 경본 총지침 380항).
하지만 특별한 시기를 피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한평생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왔는데, 특별한 시기라 해서 장례미사를 못 드린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더군다나 유가족의 상심은 한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사목자와 본당 공동체의 지혜로운 배려가 필요하다.
2. ‘장례미사 금지’의 의미
아직도 많은 교우가 주일에는 장례미사가 금지되었다고 오해하고 있다. 여기서 ‘금지’라는 뜻을 바르게 알아들어야 한다. ‘금지’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특별히 기념하는 시기에는 장례미사와 관련한 기도문과 독서를 선택해서 미사를 드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곧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의무 대축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대림·사순·부활 시기의 주일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 곧 영구를 제단 앞에 모셔 놓고, 해당 주일미사 경문을 사용해서 미사를 봉헌한다. 그리고 영성체 뒤에 고별식을 거행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영구가 나간 뒤에 마침 성가를 부르면서 주일 헌금을 봉헌하면 된다. 물론 특별한 주일에 여러 가지 물리적인 제약이 뒤따른다면, 다른 사목적 배려를 선택해야 한다.
요즘은 미사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모두 교우이고, 교회 묘지에 모신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화장을 할 때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럴 때 사목자들은 유가족과 협의하여 장례식장에서 미리 미사를 봉헌해 주는 배려를 해야 한다. 사목자 편의가 아니라, 살아생전 망자의 신앙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결정해야 한다.
3. 미사 없는 장례 예식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장례미사를 드릴 수 없는 경우에는, 미사 없는 장례 예식을 할 수 있다(장례 예식 8항 참조). 유가족이 원하고 또 여건이 허락한다면, 미사 없는 장례 예식을 성당에서 할 수 있다. 이때는 영구를 제단 앞에 모신 뒤에 말씀 전례와 고별식을 거행하면 된다(위 33항 참조). 기도문과 독서는 장례 예식서에서 선택한다(위 24항 참조). 심지어 이 예식은 미사가 아니기에 사목자의 의지만 있다면, 성삼일에도 가능하다.
4. 예비신자를 위한 장례
교회는 예비 신자에게도 각별한 관심으로 배려하고 있다. 곧 교회법은 “장례식에 관하여 예비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여겨져야 한다.”(제1183조 ①항)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임종 전에 예비신자 당사자가 원했거나 유가족이 원하면, 보통 때와 같이 장례미사를 비롯한 기타 장례 예식을 할 수 있다. 배려와 사랑의 실천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레지오 단원들은 예비신자를 위한 배려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이때 베푸는 사랑의 실천은 곧 복음 선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5. 장례식이 거부될 자
신앙인으로서 추문을 일으킨 자는 “죽기 전에 참회의 표시가 없는 한 교회의 장례식을 할 수가 없다”(제1184조, 제1185조 참조). 우리 주변에는 병리 현상으로 인해 신앙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추문을 일으키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공공연하게 신앙을 배척하고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이런 자들을 위한 장례는 그가 참회했다는 외적인 행위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장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병적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일 한 교우에 대해서는 추문의 의문이 없다고 판단되면,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를 받아온 사실이 공개되었으면 장례미사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본당 사목구 주임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활동 중 이러한 사실을 접했을 때,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자칫 망자의 명예를 훼손해 2차 추문을 일으키거나, 유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6. 레지오 장(葬) 유감
레지오 마리에 단원이 선종하면 장례 동안 많은 레지오 단원이 연도를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관습이다. 그러면 레지오 단원이 아닌 교우들은 부러움에 레지오 마리애에 가입하기도 한다. 참 좋은 일이다. 장례미사도 성대하게 봉헌한다. 선종한 단원을 기리며 본당의 모든 쁘레시디움 단기도 성당 안에 세워놓는다. 그리곤 소위 레지오 장(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용어는 사회적인 장례 관습에서 취한 용어이며, 아직 공식적인 전례 용어로 승인된 적이 없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이 아닌 교우들에게 자칫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비록 선종한 레지오 단원을 위한 장례미사라 해도, 미사는 레지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본당 공동체 미사이다. 그러므로 장례미사라는 전례 용어,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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