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왜 이제야 날 찾아왔니?
얼마나 기다렸는데”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몇 해 전 성지순례 때 벨기에 반뉘(banneux) 성지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 밤중에 깊은 산중에 도착하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바로 숙소로 들어갔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사방이 어둡고 적막해 깊은 숲속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독일에서 유학할 때 벨기에가 멀지 않은 곳이라 언제 한번 반뉘 성지에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결국에는 결심을 지키지 못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야 이곳에 왔구나 싶었다. 
반뉘에서의 이튿날 아침, 산책 때 보니 반뉘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강원도 산골의 자연이 아주 아름다운 작은 동네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도 아주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다. 그분들에게 인사를 하면 아주 반갑게 잘 받아주었다. 성모님의 발현지 중에도 파리, 파티마, 루르드처럼 인파가 많이 몰리는 순례지에 비해 반뉘는 교통이 어려워서인지 다른 유명 순례지에 비해 방문자들이 적은 것 같았다. 그런데 산책을 하며 이 작은 동네를 돌면서 참으로 편안하고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이 마음에 넘쳤다. 마치 성모님이 “왜 이제야 날 찾아왔니?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면서 반기는 느낌이 들어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에 한참 눈시울을 적셨다.
아침 식사 후 순례를 시작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순례를 못할 정도는 아니고 오하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성모님이 발현한 것은 1933년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피폐하게 만들고 독일이 다시 강성해져 2차 대전의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일반 노동자였던 아버지 율리오 베코와 어머니 루이스 웨지몽은 칠 남매를 둔 독실한 가톨릭 가정이었다. 맏딸인 마리엣따 베코는 1933년 1월 15일 주일 저녁 7시경 부엌 유리창을 통해 바깥 정원 앞에 미소를 지으며 발현하신 성모님이 처음 목격했다.

“나는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이다”
소녀는 너무 놀라서 어머니에게 “바깥에 하얀 면사포에 푸른 띠를 두르고 있는 예쁜 부인이 보여요”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귀 기울이지 않고 창문 커튼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마리엣따는 다시 커튼을 열었고 눈처럼 하얀빛으로 둘러싸인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며 즉시 묵주기도를 바쳤다. 마리엣따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부인을 따라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부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 마리엣따는 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성모님이 다시 나타났다. 성모님은 마리엣따에게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근처의 작은 우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면서 처음으로 소녀에게 “이 물에 네 손을 담그라”라고 말씀하셨다. 소녀가 물속에 손을 넣자 성모님은 “이 우물의 물은 내 것이다” 하시며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다음날 1월 19일 목요일에도 저녁 7시경 마리엣따가 정원에서 나오자 커다란 전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당신은 누구시냐는 소녀의 질문에 “나는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이다”라고 성모님이 답을 하셨다. 성모님은 다시 작은 우물로 가셔서 “이 물은 모든 나라 사람들의 물이다. 특히 병자들을 가볍게 하는 물이다”라고 하셨다. 다음날 1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경 마리엣따는 집에서 나와 정원으로 가는 도중 성모님을 만났고 무엇을 원하시냐고 물었을 때 성모님은 “이곳에 작은 경당을 하나 짓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시곤 소녀에게 강복을 주시고 사라졌다. 마리엣따에게 성모님은 총 8번 발현하셨는데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 “구세주의 어머니”라고 하시면서 특별히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이후 성모님의 샘물에서 많은 병자들이 치유를 체험하게 된다. 마리엣다는 성모님을 만나고 역시 어렵게 살다가 결혼을 하여 많은 자녀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반뉘 성지의 샘물은 ‘생명의 샘(Fons Vitae)’
우리들은 성지를 순례한 후 아름다운 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나는 반뉘 성지의 샘물이 ‘생명의 샘(Fons Vitae)’이라는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성체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 생명의 물임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미사 강론을 했다. 그리고 성모님 자신을 ‘가난한 이의 동정녀’로 소개하셨는데 당시 유럽의 보통 사람들은 모두 가난과 전쟁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난한 소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미사 후 걷는 초가을의 성지 내 숲길이 사람들이 없어 오히려 한적하여 다른 성지들에 비해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더 나고 기억이 분명해지는 반뉘 성지였다. 올해 성모승천대축일을 지내며 반뉘 성지를 기억하며 묵상한 내용이다. 

성모승천대축일은 우리나라에서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로 매우 특별한 날이다. 반뉘 성지에서 마리엣다에게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하신 성모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심에 감사하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성모승천은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성모님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성모님을 주심으로 산 자와 죽은 자, 세상의 교회와 하늘나라의 교회가 성모님을 통해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행복하다. 
성모님은 온 생애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실천하신 참된 신앙인이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셨다. 종은 구세주를 고대하는 마음이 가난한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예수님께서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었듯이 우리도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타인과 공존하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아예 배척하고 차별하려는 의식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내 마음속에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해본다. 가족 안에서도 편애하고 차별함으로써 큰 상처가 된다. 온갖 차별과 증오와 폭력이 많은 마음의 평화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역할의 중요함 때문이다. 국민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올해를 기도의 해로 강조하는 까닭은 우리 가정과 사회, 국가가 평화를 이루는 것이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성모님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봉사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레지오 단원들이 앞장서 희망을 안고 신앙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세상과 교회,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