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왕
지금의 이집트 동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치려고 하는 아말렉족의 군사들을 목전에 둔 사울은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말았는데, 그 일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사제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말이지요.
“속인은 너희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성소를 위한 임무와 제단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격분이 내리지 않게 하여라. 이제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들을 가려낸다. 그들은 만남의 천막 일을 하도록 너희에게 내린 선물이며, 주님에게 바쳐진 이들이다.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과 관련하여 사제직을 수행하고,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너희의 사제직을 선물로 준다. 가까이 오는 속인은 죽게 될 것이다.”(민수 18,4-7)
사울은 대사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침으로써 속인으로서 하느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울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내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다른 영도자를 찾으셨다는 악담 섞인 예언(?)을 사무엘로부터 듣게 된 것이지요.
임금이 된 지 오래지 않아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울이지만 하느님의 도우심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들, 곧 모압과 암몬의 자손들과 에돔과 초바의 임금들과 필리스티아인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아말렉과 싸우면서 또 하느님을 거역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 잘못은 사무엘이 전해준 다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거역이었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길을 막았던 그 일 때문에 나는 그들을 벌하겠다. 그러니 너는 이제 가서 사정없이 아말렉을 치고, 그들에게 딸린 것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다 죽여야 한다.”(1사무 15,2-3)
완전봉헌법(完全奉獻法)
사울이 한 행동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습니다. 즉 히브리말로 소위 ‘하렘’이라고 하는 ‘완전봉헌법’의 위반이었습니다. (참고로 이슬람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은 ‘하람’, 허용된 음식은 ‘할랄’이라고 합니다.) 완전봉헌법이란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헤스본 임금 시혼을 쳐부술 때 한 말에서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는 시혼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성읍 주민들을 모조리 전멸시켜, 생존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신명 2,34) 여기서 ‘전멸시키다’라는 동사는 히브리 동사 ‘하람’의 사역형으로 ‘완전 봉헌물로 바치다’는 뜻을 지니는데, 이 ‘하람’이란 단어에서 ‘완전봉헌물을 바침’을 뜻하는 명사형 ‘하렘’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렘은 전쟁 중에 생겨날 수 있는 포로나 노획물을 이스라엘 군대의 수장이신 하느님께서 차지하시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에서는 완전봉헌법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완전 봉헌물 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주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푸시고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며,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가여워하시며 너희를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18절)
임금님은 변명을 그만두십시오!
사울과 군사들은 완전봉헌법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말렉 임금 ‘아각’을 제외한 나머지 군사들은 완전히 없애버렸지만, 양과 소와 같은 기름진 짐승 가운데에서 새끼 양들을 비롯한 다른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던 것이지요. 즉 그들은 그 좋은 것들을 아깝게 여겨 자신들의 몫으로 살려두고,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없애 버렸던 것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울을 임금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그는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섰으며 내 말을 이해하지 않았다.”(1사무 15,11)
그런데도 사울은 이튿날 사무엘을 만나자 자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행하였다고 자찬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그의 잘못을 꾸짖자 그는 변명하기를, 군사들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아껴 두었던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완전히 없애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말하였습니다. “그만두십시오.” 이는 사무엘이 예언자로서 임금에게 목숨을 내놓고 한 말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소위 ‘완전봉헌법’을 어긴 사울에게 어떻게 하여 양 울음소리와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지를 물어보았는데, 그에 대해 사울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가장 좋은 것을 아껴 두었다고 하니까 ‘그만두라’라고 쏘아붙인 것입니다.
사무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사울에게 하셨던 당부를 다시 강조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1사무 15,18-19) 예언자 사무엘의 질책을 들은 사울은 뉘우치기는커녕 변명을 반복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1사무 15,20-21)
이렇듯 사울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고, 뉘우칠 마음 자체가 없었던 못난 왕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음 왕이 될 다윗과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결코 내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완전봉헌물에 대한 사울의 태도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는 마음이 없는 말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으신 ‘코르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코르반’이라는 말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좋은 물건을 보고 탐내는 사람에게 ‘딴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으로 ‘코르반’이라고 말하곤 했다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질책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중에도 부모나 친지가 형편이 어려워져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는데도 ‘코르반’이라는 말로 (하느님께 바칠 것이라는 구실로)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을 포장하는 이들이 있다면서 지적하신 것이지요.
‘내가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것들은 다 ‘하느님께 바쳐드릴 것’이니 너희들에게 줄 것이 없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런 속마음으로 ‘코르반’을 외치면서 실상은 그 물건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대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마음은 “전쟁의 전리품을 완전히 봉헌하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다.”라고 변명하는 사울의 마음을 닮아있는 듯합니다.
내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인 양 잘 포장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행동은 참으로 위선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하느님을 이용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는 잘못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입술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