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 오래 살다 보니 부모가 된다는 것과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거룩하고 소중한 일인지를 잘 실감하지 못합니다. 노년에 이르러서 가끔 묻습니다. 후속 세대를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지, 과연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희생의 삶을 산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내 삶의 안위와 편함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아닌지 저어하는 마음이 자주 듭니다. 사람은 부모가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기희생의 삶을 몸에 체득합니다. 자녀들의 생계와 양육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부모들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는 일입니다. 사제는 모든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겠다고 서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정작 헌신과 희생의 삶보다는 이기적이고 권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저 자신을 목격합니다.
가정 교육의 방향과 내용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녀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일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인격적이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육해야 합니다. 경제적 차원의 지원보다는 정서적이고 윤리적 차원의 교육이 더 중요합니다. 현대사회는 가정 교육의 이러한 핵심적 차원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 가정의 역할은 오직 경제적 지원과 경제적 대물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합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인격과 정서와 윤리적 감각에 대한 교육과 성장은 무엇보다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정서와 도덕적 감성은 그 시작부터 부모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도덕적 발전에 언제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사랑의 기쁨’, 259항).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 교육의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 교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녀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자녀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의식적이고 열정적이고 이성적으로 올바르게”(260항) 자녀 교육을 이행해야 합니다. 가정은 “지지와 동행과 안내의 자리가”(260항)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260항).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지뿐만이 아니라 자녀 교육의 여정을 섬세하게 설계할 줄 알아야 하고, 부모의 일방적 계획이 아니라 자녀와 함께 계획하고 동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 교육은 물리적이고 외적인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내적인 성장을 지향합니다. 한 존재의 “신중함과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지각”(262항) 능력은 내면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당연히 자녀 “교육에는 올바른 감각과 지성으로 문제들을 대처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또한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고, 자유는 그 자체로 위대한 선물이라는 것을 기꺼이 이해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도 포함됩니다”(262항).
자녀 교육의 방식
세상의 모든 교육은 일방적 가르침과 집착의 방식이 아니라 대화와 동반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집착과 관심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집착은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가 처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261항). “부모가 늘 자녀의 행방을 알려고 하고, 자녀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려고 집착한다면, 부모는 자녀의 공간만을 지배하려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지 못하고, 힘을 길러 주지도 못하며, 도전에 맞서게 하지도 못합니다”(261항).
자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우리의 자녀가 있는 물리적 공간, 또는 지금 이 순간 자녀들과 함께 있는 이에 대하여 묻는 것이”(261항) 아닙니다.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누구와 함께 있어?’라고 묻는 것은 관심이 아니라 집착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본질적 의미에서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신념과 목표, 바람과 꿈과 관련하여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261항). 즉,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삶을 위해 자녀가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복음의 기쁨’, 222항)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원칙이 자녀 교육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시간을 할애하며 애정을 다하여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녀들이 건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사랑의 기쁨’, 260항) 찾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녀들에게 공간적 자율성을 주고, 관심과 배려를 통한 시간적 연대성을 확보하는 것이 자녀 교육의 핵심입니다.
교사와 교육자로서 부모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교사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도덕적 양성은 학교보다 가정에서 더 먼저,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부모는 자녀의 인격과 내면의 형성에 관해 가장 책임이 있는 교사입니다.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성장은 단순히 지성적 가르침이라는 교육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인격적 만남, 정직한 대화, 근본적 체험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자신의 생에서 겪는 깊은 만남과 체험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시작됩니다.
“교육자로서 부모는 사랑과 본보기로서 자기 자녀에게 신뢰와 애정 어린 존경심을 일깨워 줄 책임이 있습니다”(263항). 부모에게서 신뢰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인격 성숙에 있어서 더 많은 장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받고 정서적 유기를 경험한 사람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정에서의 체험이 미래의 관계들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어른, 즉 앞선 세대의 사람은 부모입니다. 부모를 통해 어른과 앞선 세대를 체험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회학적으로 보면 한 세대와 다른 한 세대의 만남입니다. 사람은 다른 세대와 교감하고 유대를 맺는 방식을 부모를 통해 배웁니다. 부모에게 신뢰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세대, 특히 어른 세대와의 관계에서도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과거의 체험이 미래의 관계를 반드시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적, 정서적 성장과 체험 안에는 부모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거룩하고 소중한 일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책임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