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은 이제 천주교인들만의 장소가 아니라 관광객이면 당연히 들리는 관광 명소가 된 듯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자들뿐이지요. 명동성당에는 역사적 변천을 확인할 수 있는 두 개의 제대가 있습니다. 지금은 없는 강론대로 만든 제대와 감실 아래에 있는 돌 제대입니다.
어떤 성당에 들어가든 시선의 중심에는 제대가 있으며, 이는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의 “제대는 신자들의 회중 전체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참으로 성당의 중심에 그 자리를 잡아야 한다”(299항)라는 지침을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높은 분에게 태워서 봉헌하는 제대(altar)!
‘제대’를 라틴어로 altar라 하는데, 이 단어는 alta와 ara가 합쳐진 명사입니다. alta는 ‘높은’이라는 형용사이고 ara는 arere(태우다, 연소시키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곧, 제대는 ‘높은 곳에 희생물을 놓고 태워서 하느님께 바친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는 희생물을 불에 태워서 바치는 돌로 된 제대가 성전 앞에 있었으나,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최후 만찬을 통하여 나무로 된 식탁이 제대의 역할을 이어받습니다. 신앙을 증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기념 성당을 짓는 경향이 생기면서, 제대는 무덤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식탁’에서 도미니크 스코토는 “그리스도교 제대의 전통적인 형태는 식탁, 무덤, 제대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최후 만찬의 식탁에서 시작된 초기 교회의 제대
예수님은 유대교의 희생제사와 최후 만찬의 식탁을 조화롭게 구성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가득한 친밀감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모아서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라고 하시며 식탁에서 이스라엘의 파스카 사건이 자신을 통해 이어짐을 밝히십니다. 첫 신자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하였습니다. 여기서 “빵을 떼어 나누고”는 지금의 ‘성찬례’를 의미하며 가정에서 사용하는 나무 식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고, 황제의 지원으로 대성당이 세워지면서 예식과 전례 설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신앙의 자유 이후, 제대의 변화
이 집 저 집으로 옮기며 주일 전례를 할 필요 없이 버젓이 성당이 세워지고 고정 제대를 갖출 수 있게 되면서, 제대의 재료는 나무에서 돌로 서서히 바꿨습니다. 나무보다는 돌이 더 위엄 있고 견고하며, 교회의 영속성과 잘 어울렸고, 예수님이 바로 “모퉁잇돌”(에페 2,20; 1베드 2,6)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돌 제대에 의해 더욱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들이 많아지면서 제대를 성당 아래 무덤 위에 직접 세우거나 아예 석관을 제대 안에 병합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제대를 순교자들의 무덤과 가까이 두려는 열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대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콘페시오’(confessio, 고백) 또는 ‘마르티리움’(martyrium, 증언, 순교)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고정된 제대를 구비하기 어려운 상황, 곧 선교사나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 등은 나무 식탁 위에 성인의 유해를 넣은 ‘성석’(聖石)을 놓고 그 위에 제대포로 덮은 이동 제대를 이용하도록 하는 관습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는 “제대를 봉헌할 때 제대 밑에 순교자가 아니더라도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는 관습은 적절하게 보존”(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2항)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쪽으로 방향 정립한 제대!
어떤 단체나 모임에 처음 가면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을 합니다. 저는 ‘방향 정립’이라 말하는데, 이 말은 어원적으로 ‘떠오르는 빛을 향한 정렬’이라는 의미로 해가 뜨는 동쪽(orient)에서 유래했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부활의 상징이며 하느님의 빛을 상징하므로 성당을 지을 때 동쪽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동쪽에서 친 번개가 서쪽까지 비추듯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 24,27; 에제 43,2 참조)를 기억하고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도 ‘동쪽’을 향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동쪽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문화와 민족에 따라 동쪽을 향하던 초기 교회의 기도 방향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는 문턱이며 식탁!
제대 봉헌 예식 지침에서 “모든 성당에서 제대는 성찬례로 이루어지는 감사 행위의 중심이며, 교회의 다른 예식들은 모두 이 중심을 향하고 있습니다”(4항)라고 합니다. 교회 저술가들은 제대에서 주님의 기념제를 거행하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표상, 곧 “제대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대해서 로마노 과르디는 ‘미사, 제대로 드리기’에서 “제대는 문턱이고 동시에 식탁입니다. … 제대는 문턱으로서 우선 세상이라는 인간의 영역과 하느님의 영역을 구분해 줍니다. 제대는 하느님이 계시는 드높은 곳을 의식하게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식탁입니다”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집에 받아들여졌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2022년 1월 누적된 적자와 새로운 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폐업한 성 안드레아 정신병원의 성당은 저에게 잊지 못할 전례 공간입니다. 정신병은 관계에서의 불통으로 인해 오는 병임을 깊이 인식한 병원장 수사님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소통을 드러낼 수 있는 성당을 지어달라고 이일훈 씨에게 설계를 부탁하여 드러난 실재는 소통이 어떤 것인지를 최대한 잘 보여 주었습니다. 성당은 소통의 공간입니다!
<사진: 성 안드레아 정신병원 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