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의 삶_청주 내덕주교좌성당 정종락 프란치스코
69년간 청주교구 레지오의
초석 다져
유은정 마리아 청주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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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는 2025년 레지오 도입 70주년을 맞이한다. 레지오 도입 첫해부터 쉬지 않고, 69년간 활동하신 내덕동주교좌성당 성조들의 모후 Pr. 정종락 프란치스코(91세) 형제님을 만났다. 
정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친구 이영목 바오로(Cu. Co. 초대 단장)의 권면으로, 1955년 12월 7일 북문로성당(나길모 신부, 메리놀회)에서 세례를 받고(22세), 일주일 후 12월 15일 평화의 모후 Pr.에 입단하였다. 내덕동성당(1958년)이 설립되면서 천주 성총의 모친 Pr. 단장, 성조들의 모후 Pr. 초대 단장(1982년~단장 2번, 현재 42년간 소속), 1961년부터 Co. 서기, Co. 단장(3,4대)을 하였다. 그리고 청주 구세주의 모친 레지아(지도신부 반예문 라이문도)로 승격(1987년 6월)되면서 초대 Re. 단장 이후 4차례나 레지아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Co. 단장 시절인 1965년 3월 꼰칠리움에서 사절단이 왔고, 레지아로 승격되면서 1988년 10월에도 방문해 꼰칠리움 사절단을 2번이나 만났다. 
초창기 레지오 시절엔 간부들도 없고, 서울 세나뚜스에 참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단장들이 모여 관리 운영 부분에서 수정도 하고, 그렇게 매일 다녀도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며, 특별히 감사한 것은 청주에 레지오가 도입된 첫해에 레지오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후로 레지아 단장을 여러 번 할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네요.”20240924111259_1411820925.jpg
장손인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어렸을 때 매우 병약해 부모님의 걱정이 컸다. 세례받고 몇 년 후 고질적인 위장장애가 다시 와서 2, 3년 동안 거의 먹지를 못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에 성모님께 매달렸다. 성모님의 은총으로 기적적으로 몸은 점차 회복되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례 봉사의 길을 걸어 형제님에게 염습을 받은 분이 3~4백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염습과 입관 예절 봉사하며 선교활동 펼쳐
1964년 전교회장을 맡았을 당시, 전년도 보다 71명 더 세례를 받았다.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자를 2백 명 정도 두었는데, 그중 20여 명은 레지오에 입단하여 꾸준히 활동하였다. 선교활동은 주로 장례 예식에서 이루어졌는데, 염습과 입관 예절 봉사를 많이 했다. 청주 우암교회 근처에서 쌀장수를 하던 형제님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안타깝게도 임신 중에 운명하셨다. 교회를 다니던 부부였는데, 장례 예절을 도와드리니 장례를 마친 후, 성당에 다니겠다고 굳게 약속한 경우도 있었다. 
정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셨다. 1985년 비디오협회 동호회 활동도 하시고, 부인 신동열 젬마님과 함께 가톨릭대학(학생회장 역임)을 졸업 후 가톨릭대학 학장(4년 역임), 오창과학단지 복지대학(초대 회장 역임)에 다니셨다. 그리고 한국 레지오 50년사(편찬위원회), 청주교구 레지오 도입 50주년사(2005), 내덕동 25주년사 발간(1982년), 본당 설립 50주년사(2007년), 60주년사(2017년) 발간에 가지고 계신 자료(사진, 메모)들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전교회장, 평협회장, 교리교사, 성심회, 양업복사단(2001년설립)은 18년 6개월을 봉사하시고 은퇴(2019년)하셨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라는 말씀! 청주교구 초대 레지아 단장을 비롯해서 많은 직책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갈 길을 몰랐고, 부족함을 많이 느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주님은 형제님 발에 등불이 되어 주셨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기도의 힘을 삶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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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도, 레지오 확장도 활동에는 즐거움이 중요해 
“코로나 사태 이후, 단원 감소가 많다는 얘길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신자 수가 급증하고, 레지오가 확장된 시기도 경험했지요. 60년대 레지오 활동이 많이 생각나네요. 처음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몰랐지만, 배워가면서 열심히 하였어요. 그래서 더 즐거웠습니다. 즐거움이 중요합니다. 환한 얼굴, 기분 좋은 얼굴로 활동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레지오 확장에도 좋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초창기 저를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주신 나길모 주교님, 그리도 성숙한 신앙생활의 길을 열어주신 반예문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제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잘 정리해 주고, 청주교구 레지오 마리애 50년사를 집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강철구 요셉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웠던 초창기 시절에 길이 남을 사진, 자료 등을 꼼꼼하게 챙겨주셔서 지금의 우리들이 지나온 역사를 알게 해주시고, 주님과 성모님의 일꾼으로 겸손되이 맡은 바 일들을 성실히 해오신 정종락 프란치스코 형제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무엇보다 한국 레지오, 청주교구 레지오, 본당, Pr. 등 우리 신앙의 역사 속에 한 획을 그으신 정말 귀하고 귀한 큰 어르신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정종락 프란치스코 형제
- 성조들의 모후 Pr. 단원들과
- 청주 구세주의 모친 레지아 승격 기념
- 부인 신동열 젬마와 함께 가톨릭대학 졸업(좌) 비디오협회 동호회 활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