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느님의 지금
희망을 위한 담대한 선택
조경자 마리가르멜 수녀 노틀담수녀회

가을이 오지 않을 것처럼 덥고 습하더니 어느새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귀뚜라미와 여치가 밤새 노래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듣다 보니 이들의 노래는 밤하늘 별들이 있는 저 우주 공간 속으로 공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농협 마트에 갔다가 과일과 채소가 놓인 진열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참외, 오이, 가지 등 우리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매들의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공동체 식사 시간에 요즘 채소 가격을 이야기했더니, 한 수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구, 우리 집은 닭도 참외를 먹는데….” 이 말씀에 모두가 깔깔 웃었다. 
사실 우리 집 개들과 닭들은 우리 밭에서 나오는 감자와 고구마, 밤도 먹는다. 그러니 우리는 아주 작은 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모아 우리 먹을 양식을 준비할 때, 이들의 몫도 챙겨서 아침저녁으로 준다. 밤을 좋아하는 백구 땅이와 고구마를 좋아하는 황구 노을이를 보면 주인 닮아서 그런가보다 싶다. 식탁에서 나오는 과일 껍질과 남는 채소는 닭장으로 보내진다. 그러니 사료보다 밭에서 나오는 풀과 작물들이 그들의 양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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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씨앗 하나하나에 가슴설렌다. 이들이 지닌 희망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못난이 열매들도 버리지 않고 추수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양식이 되게 한다. 나는 생태영성의 집에 살면서 이 삶을 체험하고자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 삶의 자세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순환적인 삶의 자세를 나누곤 한다. 어떤 대상들보다도 아이들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진리를 체득하고 간다. 씨앗, 열매, 음식, 배설물과 흙…. 이 모든 순환 관계에 우리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과 본당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함께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참여자들은 이렇게 고민을 토로하곤 한다. “그런데 수녀님, 아무도 함께할 사람이 없어요.” 가정 안에서는 아이들을 설득하기 어렵고, 본당에서는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이해시키기 어렵다. 공동체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두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말로 제언하곤 한다. “신부님, 청년들 눈치 보지 마세요.” “자매님, 아이들 비위 맞출 필요 없어요.” “수녀님, 안 따라오는 수녀님들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함께 가려는 이들과 함께 그냥 용기 내서 시작하세요. 그러면 어느새 따라올 겁니다.”

내가 행동할 의지가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먼저 실행하면 돼
나는 농사짓기 전에 유치원 교사였다. 때때로 현장학습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 활동을 하곤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나는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알게 되었다.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걸어갈 때, 앞장서 가면서 뒤따라오는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계속 뒤를 향해 있으면 아이들은 그사이 선생님을 따라오기보다 길에서 장난하고 따라올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빨리 따라오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이들의 짜증도 점점 더 커진다. 그래서 깨닫게 된 원리는 교사는 목적지를 향해가면서도 아이들이 따라올 것을 믿고, 다만 간간이 티가 나지 않게 따라오는 아이들을 확인해 가면서 걸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믿음, 그리고 관심 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의향만 있다면, 내가 행동할 의지가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먼저 실행하면 된다. 담대한 이 실천은 다른 이들을 따라오게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땅을 체험하면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선택에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나누는 것을 보며, 나는 어느새 수많은 아이 무리가 이 삶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왜 아무도 하지 않는지 고민하고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실행해 보자. 이 세상에 ‘희망’을 가진 이가 몇 안 되고, 심지어 우리 자신 하나밖에 남지 않더라도, 그 희망 때문에 아직 이 세상에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자. 교회는 절망적인 이 세상에 ‘희망’을 시대정신으로 말하며, 노래하며 걸어가고 있다. 빵으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는 ‘희망’이 살아있는 씨앗이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 씨앗을 보시며, 씨앗이 품은 희망에 가슴설레 하고 계시다. 하느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