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영성체를 하던 날 새하얀 5단 묵주와 로사리오의 성모님 상본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묵주는 항상 주머니 한자리를 차지하는 필수 소지품이 되었습니다. 본당 주일학교에서 신앙학교를 가면 늘 하던 조별 게임이 있었는데, 각자 몸에 지닌 소지품들을 모두 꺼내 일렬로 늘어놓고 그 길이를 재서 가장 긴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한바탕 주머니를 뒤지면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오는데 하다 하다 휴지 조각이나 껌 종이까지 소지품이라 우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내 주머니의 5단 묵주는 가장 유용하고 강력한 승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에 묵주기도를 매일 열심히 바쳤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묵주는 항상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묵주가 심심한 손을 달래는 장난의 도구가 되기도 하였지만, 시험 때 책상 위에 얹어둔 묵주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대신학생이 되고서야 매일 시간에 맞춰 묵주기도를 바치게 되었고, 침대에 누워 묵주기도를 바치며 잠을 청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습니다. 가끔 묵주를 손에 쥔 채 잠이 들어 뒤척이는 바람에 사슬로 묶어진 묵주가 동강동강 잘려 못쓰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머무는 곳 어느 곳에나 묵주가 한두 개는 놓여 있고, 주머니에 항상 함께하는 소지품이 된 묵주는 산책의 동반자이고, 걱정의 위로자가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묵주가 병자성사의 선물로 교우들에게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묵주는 그리스도 신자의 위로자이며 동반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주머니에 있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이며, 없으면 내 영혼이 무언가 빈 것 같이 느껴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천주교대구대교구청 경내에는 성모당 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루르드의 마사비엘 성모 동굴을 본떠서 만들어진 이곳에는 매일 수많은 교우들의 방문과 묵주기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특이 성모 성월과 묵주기도 성월에는 더욱 많은 교우들이 방문하고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성모당은 대구교구의 시작(1911년)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성지입니다. 당시 초대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부임 직후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 주보로 선포하고, 성모님께서 주교관과 신학교를 건립하고 주교좌성당을 증축하도록 도와주시면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닮은 성모동굴을 지어 바치겠다는 허원을 드린 바 있었습니다. 당시 가난하던 교구의 사정에 이 같은 큰일을 동시에 이루기란 꿈같은 희망일 수도 있었으나 많은 분들의 기도와 희사 덕분에 모두 이룰 수 있게 되었고, 1918년에 성모당 건립을 완공하여 봉헌하였습니다. 성모당 동굴 위에 “원죄 없으신 잉태께 바치는 허원에 의하여”라는 라틴말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성모당을 봉헌하게 된 뜻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가 이러한 허원의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인도하기도 합니다.
묵주는 바로 우리들 간절함의 동반자
“원죄 없으신 잉태께 바치는 허원에 의하여(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라는 이 허원의 말씀은 우리가 지내는 묵주기도 성월의 기원과 의미와도 닿아 있는 말씀입니다. 1571년 터키 함대의 침공에 적의 절반도 못 되는 병력으로 싸워야 했던 절박한 상황에서 비오 5세 교황은 온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교황의 호소에 따라 교황님과 성직자, 신자들은 물론 함대에 있는 장병들도 전심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는데, 1571년 10월 7일 벌어진 레판토 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자들과 교회는 이 승리가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성모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하여 1572년 10월 7일을 승리의 모후 기념일로 제정하였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는 10월 7일을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1883년 레오 13세 교황님께서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묵주기도 성월은 우리 허원의 간절함이 드러나고, 또한 그 허원이 성모님의 전구에 힘입어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짐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는 특별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매일 사무실을 오가는 길이나 기도를 위해 성모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 손에 정갈하게 쥐여 있는 묵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두들 저마다의 허원을 갖고 있을 것이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모습에서 허원의 간절함이 배어 나옵니다. 허리가 굽은 어느 노 수녀님의 손에 들려진 묵주도, 양팔을 들고 기도하는 어떤 어머니의 묵주도 모두 그들의 간절함의 동반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묵주는 바로 우리들 간절함의 동반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묵주기도 성월을 지내면서 그 동반자가 책상 서랍이나 주머니에만 있지 않고 항상 내 손에 들려 있고, 그래서 우리 삶이 “원죄 없으신 잉태께 바치는 허원에 의하여(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은총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