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굴 순례기
신호연 헬레나 마산교구 거창성당 매괴의 모후 Pr.

그동안 힘든 구간이라고 주위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죽림굴 앞을 두 번이나 지나치면서 돌아서곤 했던 때를 상기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도전에 나섰다. 이곳 부산교구 죽림굴만을 제외하고 이미 전국의 167곳의 성지를 모두 다녀온 터였다.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간편한 옷차림과 신발을 챙기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3.4Km의 길이 꼬불꼬불하고 험난해서 힘들다니 남편 이구섭 안드레아는 가다가 힘들면 나를 두고 자기 혼자라도 다녀오겠다고 결심이 대단하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서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옛날 선조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파고들었던 그 상황만 할까? 생각했다. 묵주를 손에 쥐고 묵주알을 돌리며 오르다 보니 길은 포장도로에서 흙으로 바뀌고, 흙에서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모퉁이를 돌고, 위로 오르다가 아래로 내리고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했다.
‘숨이 차다’라고 말하기에는 순교성인들께 죄스럽고 부끄럽다. 모퉁이를 돌면 이정표가 중간 중간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를 안내해 성지를 관리하시는 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드디어 ‘죽림굴’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그제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쌕쌕 숨소리가 날 만큼 힘들었지만 마침내 해냈다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돌아가는 길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큰길에서 왼쪽으로 좁은 오솔길이 보였다. 앞 사람이 올라가는 길을 따라 십여 미터 올라가니 큰 굴이 나타났다. 입구에는 작은 십자가가 놓여 있고,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기도서도 놓여 있었다. 울산에서 온 젊은 부부들 서너 쌍이 먼저 와서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책자를 꺼내서 순교자의 기도와 주모경을 바치고 굴 안을 살펴보았다. 굴 안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깊고 어둡고 습했다.
이곳에 기해박해를 피해 100여 명이나 모여 사셨다니 새삼 머리가 숙어진다. 특히 샤스탕 정 신부님과 다블뤼 안 주교님께서 근 이십여 년 동안 이곳에서 사목하시고, 최양업 신부님께서도 3개월 동안 은신을 하시면서 미사를 집전하고 마지막 편지를 쓰셨다니 이곳이 얼마나 깊고 험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경신박해와 병인박해로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고 남은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폐쇄되었다 하니 가슴이 아린다.
그 후 1986년 11월 9일 언양성당 신부와 신자들이 죽림굴을 발견, 현재는 해마다 발견 기념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천주교 성지순례 책자 ‘죽림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