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아가 6, 10)
1988년이 기억나는 건 서울올림픽이 열리기도 했지만, 그로부터 1년 전인 1987년 9월에 세례를 받고 무엇도 모르고 이듬해 3월 레지오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기도문도 잘 외우지 못하던 30대 초반, 개근하며 레지오에 출석하여 단원들과 함께 기도하고 활동, 봉사하던 기억. 벌써 36년이 지났다.
청주 네다섯 군데 성당을 이사 다니며 본당의 제 단체에 가입하여 나름대로 봉사하며 기쁘게 지냈던 신앙생활이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던 중 2년 반여 전, 세종시로 이사하게 되었고 주일만 지키며 편안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어 새롭게 결심하곤 월요일 새벽 미사와 화요일 저녁 미사, 그리고 레지오에 입단해 끝자리에 앉아 회합을 마치고는 조용히 물러 나오고자 했다.
새로 입단한 쁘레시디움은 단장, 부단장을 포함한 10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었고, 3회 참관 후 정이 채 들기도 전인 예비 단원으로 3주간을 회합에 참가하던 중 분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존 Pr.에 남아 적응하고 싶다고 단장님께 톡으로 말씀드린 다음 날 전화를 주셨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데 분단하는 팀으로 가야 하겠고 부탁하건대 분단한 쁘레시디움에서 단장을 맡아 달라.”
이게 무슨 말인가. 2년여 잘 쉬긴 했지만 주일 잘 지키고, 레지오는 평단원으로 조용히 지내려 했더니 말이다. “고민해 보고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연락드린다”라고 하고는 황망하긴 했으나 곰곰이 생각했다. 타 간부님들과 상의했을 테고 고민 끝에 단장님께서 전화를 주셨을 텐데…. 바로 연락을 드렸다.
‘순명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나 결정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달갑지 않은 것을 선뜻 받아들이고 마음으로부터 순명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St. Ignatius of Loyola)는 “아낌없는 노력으로 순명하기를 결심하는 이들은 큰 공로를 쌓는다. 순명은 희생이 따른다는 의미에서 순교와 비슷하다.”고 말하였다.’(레지오 교본 ‘제29장 레지오 단원의 충성’ 중에서)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알에서 깨어나 아직 날지도 못하는 아기 새를 둥지 밖으로 쫓아내는 기분”이라는 단장님의 따스한 배려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고 분단 송별을 하였다.
그런데 큰일이다. 5~6명으로 분단했는데 4간부만 남게 되었다. 레지오의 확장이 최우선 목표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도 우리의 활동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계시며, 우리 단원들은 자기 성화와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 안에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하느님을 믿는 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는 레지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 한다.”(2디모 4, 7) 먼저 성모 마리아께 기도와 사랑의 봉사를 바치고자 한다. 성모님께서 큰 힘을 보태 주시어 우리의 미약한 활동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으며….
“증거자들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