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지금 성경을 펼쳐
읽어보세요”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얼마 전 동생이 사목하는 의정부교구 성지인 신암리성당에 갔는데 오래전에 내게서 빌린 것이라며 책 몇 권을 주었다. 원고 쓸 때 참고하라며 성경 백과사전도 챙겨주기에 책을 한 보따리 싸서 성북동 사제관으로 왔다. 로마서 주해서는 너무 두꺼워서 그냥 책더미 위에 올려두었다가 며칠 후 몇 장 넘겨 보았는데 신학생 때 로마서 수업 시간도 다시 생각나고 새로웠다. 
신학생 때 개신교 신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개신교에서는 로마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교 때도 많이 인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신학교 때 한 학기 동안 로마서를 가르쳐주셨던 교수 신부님의 강의가 조금 어려워서 흥미가 없었던 터라 그랬을까 나는 그때 그들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던 것 같다. 이번 여름에 로마서를 읽고 다시 공부하라고 이렇게 나에게 책이 온 것일까? 로마서는 읽을수록 계속 빠져들게 된다. 로마서는 실제로도 수많은 위인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변화를 주었던 성경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로마서 13장을 읽고 회개했다는데 어떻게 말씀을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몰려왔다. 
사도 바오로는 기원후 57~58년 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에 코린토에서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전해진다. 바오로는 어떻게든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로 가려고 애썼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어려움을 겪어 갈 수 없었다. 당시 로마에는 이미 신자 수가 상당히 많은 큰 교회가 있었고, 많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기원후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다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은 후에야 추방당한 유다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교인들이 로마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언젠가는 로마 교회에 꼭 한번은 가기를 희망했다. 그는 로마 교회를 발판으로 지금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로마 15,24 참조).

로마서에는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정수가 들어있어
사도 바오로는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복음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려는 데 역점을 두고 혼신의 힘을 다해 로마서를 서술했을 것이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복음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신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체계화시키고 바오로 신학을 조직적으로 기술한 교과서와 같다고 할까.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모든 서간 중에서 가장 짜임새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매불망 멀리 있는 로마의 신자들을 그리워하고 직접 가서 자신이 체험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서간에서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이 율법을 잘 지키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다’라는 것을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이방인 구원의 문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켜야 할 윤리 등 중요한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는 다른 서간에서 볼 수 없는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정수가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금도 신자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가능하다면 작게라도 소리를 내어 읽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준다. 만약 몇 절이라도 암송할 수 있다면 북적이는 출근길에서나 산책을 할 때도 반복해서 속으로 읊조리면서 묵상할 수 있어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중동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젊은 승무원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이슬람 신자들이 비행 중에도 시간에 맞춰 작은 카펫을 깔고 머리를 바닥에 대며 기도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솔직히 참 유난하다(?)고 생각했었단다. 그리고 숙소에서 가까운 이슬람 사원들에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시간에 맞춰 기도 시간을 알리는 큰 종소리에 놀라서 처음엔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기도 생활을 반성한다고 했다. 이후로는 자신도 비행이 있는 날 숙소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이착륙 때는 주모경을 바친다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일을 할 때도 수없이 화살기도를 한다고 했다. 
신학생 시절, 나도 지도 신부님께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가장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줄까? 그냥 읽으면 돼.”
“네?”
“그냥 읽어”
“......”

중요한 것은 성경을 매일 조금이라도 지속적으로 읽는 것
성경 읽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반복해서 읽으며 마음속에 새기다 보면, 어느새 성령께서 말씀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말씀에 맛을 들이게 된다. 성경 말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실제적인 하느님의 능력이요, 힘이며, 지혜이다. 성경을 쓴 목적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요한 20,31 참조) 
성경보다 더 귀중한 책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것은 성경을 매일 조금이라도 지속적으로 읽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것도 습관이 안 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선종하신 차동엽 신부님이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어느 날 나는 “신부님은 성경을 어떻게 읽고 공부해요?”라고 질문했다. 그때 차 신부님은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산동네로 연탄 배달을 갈 때면 어깨를 짓눌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냥 한 발자국 앞만 보고 걸었어요. 멀리 보면 절대 힘이 빠져 못 올라가요. 나는 성경을 읽을 때도 그냥 무식하게(?) 막 읽어요.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자꾸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쭉 연결되고 이해가 돼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여러분도 지금 성경을 들고 펴서 보십시오. 거기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