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채봉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에서 앞의 질문을 던지며 만남의 종류를 말하였다. 그는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인데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피어있을 때 환호하다 시들면 버리는 꽃송이 같은 만남이며, 가장 비천한 만남은 힘이 있을 땐 간수하고, 방전되면 버리는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어떤 만남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연구 방법 중에는 연구 대상의 문제나 현상을 한 특정 시점에서 조사하는 것이 아닌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연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 ‘종단 연구’라고 하는데, 대체로 연구 환경을 만드는 등의 별도 조작 없이 장기간에 걸쳐 연구대상자의 실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1938년에 시작되어 8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되는 종단 연구가 있다. 바로 ‘하버드 그랜트 연구’이다.
이는 연구비를 후원한 윌리엄 그랜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연구 시작 당시 미국 하버드대 학부 2학년 남학생 268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대학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를 관찰한 연구이다. 당시 연구대상자 중에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포함되기도 했는데, 이 연구는 대상자의 아내뿐 아니라 그들의 자손을 포함하여 여성과 빈민가 출신 남성까지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13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연구의 공식 명칭은 ‘하버드 대학교 성인 발달 연구’로 바뀌었다.
누적 연구비만 해도 상당한 이 방대한 연구의 주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행복한 인생의 비결 찾기’였다. 즉 연구진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를 물으며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대상자들은 2년마다 신체적·정신적 건강, 결혼 생활, 일, 은퇴, 취미 등 생활에 관한 질문지에 답하였고, 5년마다 전문의의 건강검진을 받았다. 또한 대인 관계, 경력, 노년기 적응에 관한 심층 면접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관찰, 추적되었다. 연구진은 실험 시작 후 2009년까지 72년간 추적하고 분석한 연구 결과를 미국 시사 월간지에 처음 발표하였는데, 국내에서는 2010년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나와 연결된 공동체와의 관계가 나의 행복과 직결돼
행복의 비결에 대한 그들의 답은 명쾌했다. 바로 ‘관계’였다. 그것도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는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는 다른 종단 연구들과도 같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가족과 형제, 친구뿐만 아니라 나와 연결된 공동체와의 관계가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뜻으로,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결론이다. 이에 연구진은 좋은 관계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함을 강조한다. 마치 몸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아 영세자인 K형제는 사춘기를 맞은 작은 아들의 일탈에 어려움을 느껴 그동안 육아를 핑계로 했던 냉담을 풀면서 자연스레 단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학교에서 하느님을 비롯하여 그의 부모와 아내, 자녀와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크게 변화하였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저는 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왔고 실제로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보니, 저 자신이나 가족보다 남을 우선시하는 제 모습이 자존감 낮은 사람의 특성과 일치하더군요. 아마도 제가 아들 셋 집안의 막내로 자라면서 늘 성당 봉사로 바쁜 부모님들에게서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저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위한 저의 동기는 달라졌지요. 전에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제 안에서 그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가는 것을 발견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저절로 사랑 표현이 되는 등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단원이 한 주 동안 두 시간의 실질적인 활동을 실제로 바쳐야 하는 것은 단원 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중요한 의무이다.(교본 289쪽 참고) 이를 위해 교본에서는 친밀한 관계가 레지오 활동의 본질이라며 ‘친교가 없는 활동은 그 성과가 알맹이가 없거나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교본 443쪽)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과의 친밀함은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하느님 사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게다가 관계라는 말 자체가 이미 두 사람 이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우리의 일상이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단원들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건강한 관계라면 어떨까?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도 같이 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주회나 평의회의 출석률을 높이고 나아가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며 결과 또한 풍성하게 만들지 않을까? 어쩌면 결과 이전에 과정의 즐거움으로 충분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가 레지오 활동의 본질
단원들끼리 서로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리고 서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며 친절하게 대하는가? 또한 갈등이 생기면 묻어두기보다 풀려고 노력하는가? 그리하여 매주 만나는 단원이나 매월 만나는 평의원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뵐 수 있어야’(교본 84쪽)하는 단원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활동 대상자를 넘어 ‘동료 단원들 안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금 뵙고 섬기시듯이 한다’라는 상훈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이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행위를 하느님께 드리는 행위로까지 높여 주는 원리’라고 교본은 말하고 있다.(교본 84쪽 참고)
하지만 ‘고통 없이 승리가 없고 –중략- 십자가 없이는 왕관이 있을 수 없다.’(교본 55쪽) 이에 우리는 행복을 넘어 십자가 승리를 위해 자기희생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다음 말을 기억하자. ‘내가 성모님과 온전히 일치할 때, 성모님은 은총과 사랑으로 나를 가득 채워 주시며, 나 또한 넘쳐흐르는 시냇물처럼 다른 이들의 영혼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교본 168쪽)
“성모님은 나를 통하여 내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계시는 예수님을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드 야아헬: 신뢰의 미덕)(교본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