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통에 농작물이 많이 녹아 없어졌다. 초보 농부 마리 지혜 수녀님이 내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 고추 어쩌지? 노린재가 많아졌어. 가지가 몇 개 부러지고, 벌써 탄저병이 시작된 것 같아.” “우리 고구마 어쩌지? 빗물 먹고 웃자라서 넝쿨이 너무 무성해. 고구마순을 다 쳐줘야 하나?” “우리 수박 어쩌지? 열매 맺기를 그친 것 같아. 호박하고 오이는 흙이 부족해서 덜 자란 것 같고.”라며, 애가 타는 마음으로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수녀님을 보며 사실 내 마음이 애가 탔다. 그리고 이내 고추와 수박, 고구마, 호박이 함께 외치는 소리를 마음 깊은 데서 듣게 되었다. ‘우리 지혜 수녀님 어쩌지? 이 더위에 너무 지치시는 것 같아.’
처음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한참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랫집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에 고추만 찾아가고 고구마에게는 찾아가지 않았나 보네 그려.” 갑작스런 이 말씀에 나는 이렇게 여쭈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거여. 고추에게만 찾아가니 고추는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고구마는 비리비리 한 거 아녀?”
사실 그랬다. 고추가 아주 예민한 작물이라, 고추에게만 신경 쓰고 고구마에게는 소홀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돌보기를 소홀했던 고구마와 다른 작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자기 새끼들 가운데 몇몇은 편애하고, 몇몇에게는 무관심한 어미였음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정말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와 손길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지혜 수녀님의 모습을 보며 알게 된 것은, 농작물들은 햇빛과 물, 양분 외에 정말 중요한 것을 받아먹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주인의 땀방울이다. 주인의 땀방울은 작물에게 주는 젖이었음을, 그러니 농부는 농작물의 어머니였음을 관상하게 된다. ‘어쩌지?’라며 염려가 가득한 지혜 수녀님의 말씀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애타는 어머니의 탄원과 같이 다가온다. 무릎 관절이 안 좋아져서 쭈그리기가 어렵다 하시지만 앉은뱅이 상추 골을 만들 때는 아예 땅에 붙어 계셨다. 땀을 너무 흘려 얼굴과 손이 퉁퉁 부었는데도, 너털웃음을 웃으며, “여기 호박 좀 봐. 너무 이쁘지 않아?”라고 말씀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은 자식을 생각하느라고 내 아픈 것도 모르고 동분서주하는 어머니의 딱 그 모습이다.
지속 가능한 삶의 방법을 ‘오늘’ 선택해야
지금 우리는 “우리 지구 어쩌지?”하고 진심으로 서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런 물음을 주고받기에는 준비가 덜 돼 보인다. 그 염려를 담은 ‘어머니 마음’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단지 아이를 낳아서만이 ‘어머니 마음’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과 생태 캠프를 하며 환경부장관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아이가 자신의 편지 맨 위에 “환경부장관님, 꼭 읽어주세요.”라고 시작하고 있어서 단번에 읽게 되었다. 아이는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예전에 저는 환경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거니까 저는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교육을 받아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오래오래 살고 싶거든요! … 앞으로 저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를 위해 부모님께도 알리고 노력할 테니까, 어른으로서 환경부장관님도 저희의 미래를 생각해 주세요. 환경부장관님이 저희의 미래를 생각해 주신다면, 제가 멋진 어른이 돼서 환경부장관님을 만나러 갈게요. 사랑합니다.” 이 아이의 마음도 지구의 모든 생명들에 대한 ‘어머니 마음’이다.
위기를 보며 우리는 “우리 지구 어쩌지요?”라고 진심 담은 염려를 주고받도록 하자. 미래세대가 그 어떤 위기에서도 희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삶의 방법을 ‘오늘’ 선택하도록 하자. 언제나 ‘지금 여기’에 계시는 주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