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다
사실 사무엘은 사울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오기 하루 전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놀라운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이맘때에 벤야민 땅에서 온 사람을 너에게 보낼 터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라. 그가 내 백성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다. 나는 내 백성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1사무 9,16) 사울을 보는 순간, “내가 너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가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은 “당신이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으니, 더 이상 그 일로 마음을 쓰지 마시오.” 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기대가 당신과 당신의 집안에 걸려있소.”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사울은 “저는 이스라엘의 지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오.”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서른 명가량의 손님들이 모여 있는 산당으로 데리고 가서 윗자리에 앉힌 다음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있을 일과 표징들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불러 하느님 앞에 모아놓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고 여러 나라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내신 하느님의 업적에 대해 언급한 다음, “온갖 재앙과 재난에서 여러분을 구해 주신 하느님을 그토록 배척하고 안 되겠다며 임금을 세워달라는 여러분은 이제 지파와 씨족별로 하느님 앞에 나서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가까이 오자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먼저 벤야민 지파를 뽑으시고 이어 씨족별로 모인 그들 가운데에서 키스의 아들 사울을 뽑으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가 이 사람이다.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은 없다.” 하면서 사울을 내세우자 온 백성은 “임금님 만세!” 하며 환호를 올렸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뽑아 왕으로 세우고 난 다음 백성에게 왕이 가지게 될 권한을 설명하고, 그것을 책에 적어 하느님 앞에 두었습니다. 사울이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여주신 용사들이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왕으로 뽑힌 사울에게 예물을 바치기는 고사하고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암몬 사람들을 무찌르다
그때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요르단강 오른쪽의 땅인 ‘야베스 길앗’을 포위하였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족을 이끌던 ‘나하스’에게 그들을 섬기겠다며 조약을 맺자고 했지만, 나하스는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두 후벼내어 온 이스라엘에 대한 모욕으로 내어놓는다면 너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급해진 야베스 사람들은 남서쪽으로 80km쯤 떨어진 ‘기브아’ 사람들에게 전령을 보냈고, 이어 사울도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펼쳐지는 이야기를 사무엘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하느님의 영이 사울에게 들이닥치니, 그의 분노가 무섭게 타올랐다. 사울은 겨릿소 한 쌍을 끌어다가 여러 토막을 내고, 그것을 전령들 편에 이스라엘의 온 영토로 보내면서,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는 자의 소는 이 꼴이 될 것이다.’ 하고 전하게 하였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백성을 사로잡자 그들은 하나같이 따라나섰다.”(1사무 11,6-7)
그렇게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 3만을 포함하여 33만이었습니다. 사울의 군사들은 세 부대로 나누어 암몬군을 무찔렀고 살아남은 암몬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울이 승리하자 사람들이 사울이 임금이 될 때 업신여겼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벌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오늘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어주신 날이니 아무도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길갈’로 가서 왕정을 새롭게 다지자고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온 백성은 길갈로 가서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고 하느님께 친교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사무엘의 경고와 하느님의 보증
이제 판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사무엘은 백성에게 하느님의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임금을 세워 주길 요구한 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요구하여 뽑은 임금이 여기 있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임금을 세워 주셨소.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면, 여러분뿐 아니라 여러분을 다스리는 임금도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따르게 될 것이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주님의 손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임금을 치실 것이오.”(1사무 12,13-15)
사무엘은 백성이 임금을 요구한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악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며 “밀을 거두는 때인 지금 내가 하느님께 간청하여 천둥과 비를 내리시게 하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무엘이 그렇게 하느님께 간청하자 천둥과 비가 내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무엘 예언자의 말을 보증해 주신 것이지요. 하느님과 사무엘을 경외하게 된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 종들을 위해서 주 당신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실 우리는 이미 저지른 모든 죄에다 임금을 요구하는 악까지 저질렀습니다.”(1사무 12,19) 백성의 참회하는 마음과 간청을 들은 사무엘이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이 모든 악을 저질렀지만,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따르지 않고 돌아서는 일 없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시오. 여러분에게 이익도 구원도 주지 못하는 헛된 것들을 따르려고 돌아서지 마시오. … 만일 여러분이 여전히 악행을 일삼는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임금도 모두 쫓겨날 것이오.”(1사무 12,20-25)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면서도 하느님을 충심으로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면 임금을 비롯한 모든 이가 쫓겨날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이제부터 회심하고 전심전력하여 하느님을 따르면 된다는 말씀에 힘을 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내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만 더 관심을 기울이는 나의 삶을 반성합니다. 아무런 이익도 구원도 주지 못하는 헛된 것들을 따르려고 돌아서지 말라는 예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울왕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 ‘게바’에 있던 필리스티아인들의 수비대를 치자, 그 소식을 들은 3천의 병거, 6천의 기마 등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필리스티아 군사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미크마스’에 진을 치자, 그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군사를 보유한 사울이 ‘길갈’에서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오기로 한 날에 오지를 않자 겁에 질린 군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다급해진 사울이 (사제가 바쳐야 할) 번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그렇게 행동한 사울을 꾸짖었습니다. “임금님은 어리석은 일을 하셨고,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시는 사람을 찾으시어, 당신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임명하셨습니다.”(1사무 13,13-14)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한 공경을 소홀히 한 사울 임금을 내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