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성당은 독서대가 두 개일까?”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이 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어가면 독서대가 두 개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는 제대가 있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한 독서대이고, 다른 하나는 남쪽에 위치하여 북쪽을 향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빈 무덤을 상징하는 회색 대리석이 있고 옆에는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파스카 촛대가 서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서간을 낭독하는 ‘독서대’와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을 빛의 세계인 남쪽에서 어둠의 세계인 북쪽으로 선포하는 ‘복음대’로 구성된 모양새입니다. 성찬 전례의 중심인 제대가 주로 강조된 한국 성당들에서는 볼 수 없는 말씀 전례의 공간의 독특함이 눈에 부각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서대의 성경적 배경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인 독서대의 기원은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장소인 베마(bema)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에즈라 사제가 회중 앞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율법서를 선포한 “나무 단”(느헤 8,4)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당 봉헌 예식’의 말씀 전례 제1독서는 언제나 느헤 8,2-4ㄱ.5-6.8-10을 봉독합니다.
인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이사 40,9)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에 따라 부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독서대로 올라간다”라고 전해줍니다.
‘올라가서 선포하다’는 관점은 독서대의 라틴어 Ambo가 ‘올라가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anabainein에서 유래했음과 일치합니다. 성경적 배경과 어원상으로 볼 때, 독서대의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회중이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높은 곳이라는 것과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독서대 발전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사도 헌장’은 이미 독서자와 부제가 독서를 위해 올라가는 높은 곳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규범적 성격의 첫 증언인 라오디케아 공의회(371) 15조에서 “성당에서 말씀을 낭송하거나 시편을 노래하는” 임무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지 않은 사람은 이 구조물에 올라가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교회는 일찍부터 독서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말씀의 공간에 대한 규정으로 그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1세기에서 13세기에 들어와서, 그전에 하나였던 독서대가 두 개로 증가하는 전환이 일어나는데, 저명한 전례학자인 발렌지아노(C. Valenziano)는 ‘독서대-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 이런 현상을 “독서대의 탈문화화”라고 합니다. 그가 설명하는 특징들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독서대와 복음대로 구분하여 배치되어 있고, 둘째는 독서대는 빛을 상징하는 동쪽을 향하며, 복음대는 남쪽이나 북쪽에 배치한 방향성이 있으며, 셋째는 독서대와 복음대가 있는 공간을 낮은 담으로 둘러서 작은 정원처럼 만들어 하느님과 대화하는 에덴동산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산상수훈의 언덕처럼 구성했다는 것입니다.
회중석으로 이동한 독서대
독서대는 13세기 이후에 회중석으로 이동하여 참석한 이들에게 말씀을 보다 잘 들을 수 있도록 이동하여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루이 보아예(Louis Bouyer, 1913-2004)는 저서 ‘건축과 전례’에서 독서대의 일종인 강론대(pulpitum)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회중석에서 복음서가 위치하는 왼쪽 측면의 기둥에 위치했으며, 13세기 탁발 수도회(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가 확산되면서 설교에 대한 새로운 자극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위치는 많은 군중이 쉽게 접근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그곳은 더 이상 말씀 선포의 장소만이 아니라, 모국어로 하는 해설, 특히 복음이 선포되고 그에 따른 설교와 교리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점차 그 사용은 강론에만 국한되었다.”
1915년 명동성당에 최초로 ‘강론대’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명동성당 주임 푸와넬(한자명 朴道行, 1855-1925)신부의 고향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성당 강론대를 본떠 베네딕도회 목공소에서 만들었습니다. 강론대는 제단을 바라보고 오른쪽 세 번째 기둥에 설치되었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1978년 12월 명동성당 시설 개선의 일환으로 철거되어, 그 부자재로 독서대와 제대를 만들었고, 일부는 혜화동성당의 독서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독서대
현재의 ‘로마미사경본 총지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전례 개혁을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이 총지침 309항은 독서대에 대한 규정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배치 위치나 형태 등을 자세히 말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원칙과 전례적 용도에 대해서 주로 언급합니다.
위치는 신자들의 집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 곧 “이 장소는 말씀 전례 동안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이동식 간이 독서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 품격이 있는 “고정된 독서대”를 놓으라고 강조합니다. 독서대에서 행해지는 전례 행위는 “오로지 독서들, 화답송, 파스카 찬송”이고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독서대에서는 “말씀의 봉사자만” 올라가서 자신의 직분을 행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성당 봉헌 예식’에서 주교는 ‘미사 독서’를 교우들에게 보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성당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밝혀 주고 교회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줄 것입니다.” 이어서 주교는 첫째 독서자에게 ‘미사 독서’를 줍니다. 독서대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밝히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독서대’입니다.
<사진설명> 명동성당 독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