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한 부부들의 ‘이혼’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문제 발생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혼인 전 교육이 필요하다. 교회가 가르치는 혼인의 목적과 특성에 대하여, 혼인으로부터 발생하는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 사항에 대해서, 그들이 꾸미고자 하는 ‘가정’에 대한 책임과 요구되는 희생과 인내의 덕목들도,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혼인 생활 가운데 예견되는 어려움에 대한 각오도 다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 능력까지 그들에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혼인의 당사자들은 이 모든 불편과 어려움을 숙지하고 적극 수용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이렇게 인정한다. “그들은 거룩한 ‘가정’을 꾸미고자 용기 내는 젊은이들이다.”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에 승리한다(Omnia Vincit Amor).”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사랑’이니, 두 사람이 용기를 내고 힘을 합하여 최후의 승리자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교구에서 나름의 혼인 전 교육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 모두가 씩씩하게 사회로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주길 기도한다.
이제 ‘혼인장애’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여러 경우가 있다. 가톨릭 신앙인 사이의 혼인, 가톨릭 신앙인과 개신교 신앙인 사이의 혼인, 가톨릭 신앙인과 불교 신자 혹은 무종교인 사이의 혼인 등이 있다. 2023년 통계치를 보면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앙인은 11.3%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밖의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문제 될 것 없다. 그들이 가톨릭 신앙인의 신앙생활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혼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혼인한 뒤, 가톨릭 신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예견된다면, 이렇게 조언한다. “서로 충분히 대화하여 설득하길 힘써라. 그래도 극복되지 않으면 그 사람을 포기해라.” 장가들고 시집가는 문제보다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는 문제가 더욱 중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신앙의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이다. 더 좋은 사람을 찾아보시라. 세상에 얼마나 선남선녀가 많은지 모른다.
냉담 중 혼인은 장애 요인 풀고 ‘혼인예식’을 사제 앞에서 하면 돼
두 번째 문제를 보자. 두 사람이 가톨릭 신앙인이거나 둘 중 하나가 가톨릭 신앙인인데, 이들이 냉담 중에 혼인했다. 성당에서 혼인하지 않고 일반 예식장에서 했다. 그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생활하다가 어느 날 냉담을 풀고 신앙생활을 하고자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본당 사제를 만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장애 요인을 풀고 ‘혼인예식’을 사제 앞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할 수도 있고, 조용히 사제관에서 2인의 증인만 대동하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성당에 나온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거부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태도를 보인다. “당신이 신앙 생활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으나, 나를 성당에 오라 가라 하지 마라. 나는 지금 나갈 생각 없다.”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 되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혼인의 근본 유효화’라는 것이 있다. 교구장 주교는 혼인예식을 사제 앞에서 치르는 것을 관면해 주면서, 두 사람의 앞선 혼인을 근본적으로 인정해 줄 권한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권한은 교구의 사법대리 신부에게 위임되어 있는데, 어쨌든 그들을 통해 몇몇 서류를 준비하고 관련 절차를 밟으면, 깔끔히 해결될 수 있다. 신앙인으로 새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복음’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가 충실히 신앙생활 하면서 나머지 배우자에게 충분한 감동을 준다면, 언젠가 성가정을 이루리라 믿는다.
세 번째 문제, ‘이혼한 사람들의 혼인문제’를 보자.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해 보겠다. 교회 안에서 혼인하고 밖에서 ‘이혼’하였다. 그리고 각자 홀로 살고 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홀로 산다면, 신앙생활 하는데 문제없다. 교회는 그들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부로서의 혼인 유대는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굳이 무리하면서 해석하자면, 교회는 그들의 현 상태를 단순한 별거 상태로 본다는 것이다.
‘혼인무효소송’ 통해 잘못된 혼인 바로잡아 이혼의 아픔 치유해
이혼한 부부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하였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큰 문제이다. 교회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모든 교구에 ‘교구법원’이 있다. 이곳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른바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여 앞선 자신의 혼인에 대해 무효 선언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혼인무효소송’을 통해 잘못된 혼인을 바로잡아 주는 것으로 ‘이혼’의 아픔을 치유시켜 준다. 좀 더 설명해 보겠다.
교회는 합법적이고 유효한 혼인이 되는데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교회법으로 섬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혼인이 제대로 체결되고 당사자들이 책임 있게 가정을 꾸려나가도록 돕기 위함이다. 만일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혼인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소송제기로 그 혼인이 유효한지, 혹은 무효한 혼인이었는지를 법정에서 가릴 수 있게 하였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재혼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교구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자세한 이야기와 방법은 그곳에서 듣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먼저 소송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 걸린다. 소송의 시작은 본당신부를 통해서 한다. 총비용은 대략 10만 원 정도 든다. 이는 실질 서류비용이다. 본당신부를 만나 ‘소송제기를 위한 기초 진술서’를 작성하고 필요 서류를 준비하여 제출하면, 법원에서 연락이 온다. 한 번 정도 교구법원에 가서 본인의 혼인에 대한 대면 진술을 해야 한다. 이것은 꼭 필요하다. 법원에서 헤어진 배우자를 만날 일은 없다. 법원에도 변호사 신부와 성사 보호관 신부(검사 역할) 그리고 재판관 신부가 있는데, 그들 모두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법원의 문제이니, 혼인 당사자들은 그 과정을 세세히 알 필요 없다. 그저 한 번 법원에 나가 사제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앞선 혼인과 이혼 과정을 소상히 진술하면 된다. 그 후에는 소송의 결과를 기도하며 기다리면 된다. 6개월 정도 지나면 ‘기쁜 소식’이 도달하리라 믿는다.
소송 결과가 도달되면, 이른바 ‘혼인무효’를 확인받으면 앞선 혼인이 무효가 되어 그는 교회 안에서 새롭게 혼인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 피상적으로 볼 때, 교회 안에서 두 번 혼인하는 것처럼 보이나, 앞선 혼인이 무효가 되었기에 그는 이제 제대로 된 혼인을 처음 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교회는 참으로 ‘자비로운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