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희극인들의 수호자, 성 제네시오(축일 8월 25일)
4세기의 성 제네시오는 당대에 인기 많던 희극배우였다.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던 제네시오가 한번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롱하는 내용이 담긴 연극을 공연하게 되었다. 가톨릭교회의 세례성사를 모독하는 촌극이었다. 제네시오는 이 촌극에 세례성사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예비신자 역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인기 높은 희극배우 제네시오가 공연 도중에 성령께 감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배우에게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는 결기가 불같이 일었고, 그리하여 실제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 공개적인 이벤트를 보고 격분한 황제는 즉시 제네시오를 체포하여 집정관에게 넘겼다. 제네시오는 집정관 앞에서 참혹하게 고문을 당했다. 심한 매질에 더해 쇠갈고리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불붙은 나무토막에 살이 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제네시오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꿋꿋하게 고백하며 “나를 수천 번 죽인다 해도 나의 입술과 나의 마음에서 그리스도를 앗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제네시오는 참수형을 당했다.
제네시오는 공연 중에 이런 대사를 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기를, 그리하여 나의 죄가 용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네시오의 진정 어린 연기력은 황제의 분노를 샀고, 제네시오는 결국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교회는 성인을 연기하는 남녀 배우들과 희극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그리고 연기하는 이들은 자신의 신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해주기를 성인에게 청한다.
가수와 음악인들의 수호자, 성녀 체칠리아(축일 11월 22일)
3세기의 성녀 체칠리아는 강제로 이교도 귀족 청년과 결혼한 뒤, 그 청년에게 자신은 일찍이 동정 서약을 하였으며 천사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노라고 밝혔다. 그 청년은 천사를 자기 눈으로 보게 되면 성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성녀는 그 청년에게 먼저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게 했다. 세례를 받은 청년은 두 천사와 성녀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에 성녀의 동정 서약을 받아들였다.
이 청년 성 발레리아노와 나중에 역시 천사를 보게 된 동생 성 티부르시오는 그때까지의 사치스러운 삶을 멀리하고 노예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총독에게 체포되어 심한 매질을 당한 끝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이때 형제 성인의 굳은 신앙과 용기를 보고 그리스도인이 된 총독의 시종 성 막시모도 체포되어 매질을 당해 순교했다. 그리고 성녀도 이 세 순교자의 장례를 치러준 뒤 체포되어 목욕탕의 열기로 쪄서 죽이는 형벌을 당했고, 그래도 죽지 않자 참수형을 받았다. 그런데 형리의 세 차례 서툰 칼질에 숨이 끊어지지 않아 3일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교회는 성녀를 음악인들과 가수들, 그리고 교회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는데, 이는 성녀가 원치 않던 결혼식 때 연주되던 음악 소리와 환호하는 소리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내심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무용수들의 수호자, 안티노폴리스의 성 필레몬(축일 3월 8일)
3세기 안티노폴리스의 성 필레몬은 아프리카 북부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무용수이자 관악기 연주자였다. 본래 그리스도인을 멸시하고 조롱하던 성인은 우연찮은 기회에 교회의 부제로서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까지도 진심으로 축복하는 성 아폴로니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탄압이 한창이던 시기에 성인은 이교의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금화 4잎을 받고 아폴로니오 부제 대신 춤을 추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춤은 가면을 쓰고 추기 때문에 박해자들에게 얼굴이 드러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춤을 추기 직전 성인은 성령에 이끌려 회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인은 은밀히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춤추기를 거부했다. 성인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성 아폴로니오와 함께 자루에 넣어졌고, 이 자루는 단단히 묶여서 바다에 던져졌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발뒤꿈치를 꿰뚫리어 묶인 상태로 도시 이곳저곳을 끌려다니다가 끝내는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도 하고, 화형을 선고받고 기둥에 묶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불이 꺼지는 바람에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가 바다로 던져지는 형벌로 순교했다고도 한다.
교회는 뛰어난 춤꾼이던 성인을 무용수, 춤을 추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예술가들의 수호자, 볼로냐의 성녀 가타리나(축일 3월 9일)
15세기 볼로냐의 성녀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법률가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성녀는 일찍이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했고, 들어오는 혼담을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수도자처럼 경건하게 기도와 노동을 하며 살고자 하는 일단의 부인들과 함께하는 베긴회라는 공동체에 합류했다. 더러는 시련과 유혹을 겪기도 했으나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해 잘 극복해 나가던 중에,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18세 때 ‘성체의 가난한 클라라 수녀회’를 세우고 수련장이 되었다. 이 수녀회는 20여 년 뒤에 볼로냐로 자리를 옮겨 갔다,
성녀는 수많은 환시를 체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는 어느 해 성탄절에 체험한 환시, 곧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으신 마리아 님에 대한 환시를 글로 기록한 것이 있는데, 이 글은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성탄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성녀는 1463년 50세의 나이로 선종했는데, 성녀가 묻힌 무덤에서 향기가 나는 등 기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매장한 지 18일 만에 부패하지 않은 성녀의 유해를 도로 발굴해 수도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자세로 수녀원 성당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른다.
성녀는 뛰어난 성덕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편으로는 글씨와 그림에도 빼어난 재능이 있어서 성무일도서를 손수 장식하고 장정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이 성무일도서의 아름다운 작업들은 교회가 성녀를 화가, 예술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는 이유를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