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담긴 뜻을 아시나요? 얼굴은 ‘넋, 혼, 영혼’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얼’과 ‘동굴’을 뜻하는 한자 ‘굴(窟)’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우리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굴’, ‘영혼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흔히 얼굴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신앙의 관점에서 이렇게 풀이하면 어떨까요?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된 우리에게 얼굴이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곧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자리요, 그분을 드러내는 창과도 같습니다. “그럼, 지금 당신의 얼굴은 안녕하십니까?”
사제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합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마주하는 얼굴들, 강의를 통해 만나는 얼굴들, 면담으로 만나는 얼굴들 등. 언제나 행복하고 웃는 얼굴만 마주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무뚝뚝하거나 경계하는 얼굴들을, 또 때로는 근심과 슬픔이 서린 얼굴들을, 아주 가끔은 경계하거나 적대시하는 얼굴들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만난 수많은 얼굴도 이러했겠지요. 예수님 발치에 앉아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의 얼굴(루카 10,38-42 참조)뿐 아니라, 간음하다 사람들에게 붙잡혀 온 어느 여인의 얼굴(요한 8,1-11 참조), 동족으로부터 손가락질받으며 철저히 외면당한 채 홀로 살아가는 어느 세관장의 얼굴(루카 19,1-10 참조),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나인 지방의 어느 과부의 얼굴(루카 7,11-17 참조), 비난과 적대의 눈길로 예수님을 시샘하며 경계하던 어느 종교 지도자들의 얼굴(요한 11,45-57 참조) 등. 예수님이 만난 얼굴도 기쁨 가득한 얼굴만이 아니라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다양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얼굴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간음한 여인은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외톨이 세관장은 예수님을 집에 모시며 구원받게 되었고, 외아들의 죽음 앞에 큰 슬픔에 빠진 과부는 다시 그 아들을 되찾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깨닫고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운 얼굴을 되찾아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주님, 저희가 함께 봉헌하는 이 미사를 통해, 저희가 신앙에 대해 함께 나누는 이 강의를 통해, 저희가 함께하는 이 면담을 통해 당신 친히 자비와 위로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는 그들 안에 간직한 이름다운 얼굴을 되찾게 해 주소서.”
물론 기도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믿음 안에서 할 수 있는 노력도 다 기울입니다. 더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고, 더 재밌고 유익한 강의가 되도록 열성을 다하고, 또 편견 없이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그 얼굴에 기쁨과 행복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볼 때면,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오고 어느샌가 제 얼굴에도 하느님의 얼굴이 서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레지오 단원 되기를
누구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레지오 단원은 그 누군가가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아주는 이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9년 SBS에서 방영된 ‘열혈사제’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 하나가 생각납니다. 구담시의 성자라 불리며 안타까운 죽임을 당한 이영준 몬시뇰이 성당 유치부 아이가 잃어버린 인형을 찾아주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뒤지면서 주인공인 김해일 신부에게 한 말입니다.
“이제 진짜 사제가 할 일이지, 뭐. 사람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걸 찾아주는 거. 그 찾은 것이 영혼의 안식을 주게 만드는 거.”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느라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의 기쁨이 되길 희망하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게 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그랬으면 합니다.
저와 함께 교구청에서 생활하시는 선배 국장 신부님과 커피를 마실 때였는데 갑자기 미소 띤 얼굴로 저에게 다가오시더니 제 이마에 양 엄지손가락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최 신부! 웃어, 웃어!” 그러면서 양 엄지손가락으로 제 이마의 팔자 주름을 펴주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단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 때문에 저도 모르게 생겨 버린 못난 이마의 팔자 주름만이 아니라 제 마음의 굴곡과 근심도 펴주셨던 것이죠. 신부님 덕분에 잠시 잃어버린 웃음과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 특히 삶의 굴곡으로 주름진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펴주는 레지오 단원이 되기로 다짐해 봅시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말해 줍시다. “웃어요, 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