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2
사랑받고 자란 사람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

사랑받고 자란 티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티가 납니다. 구김살 없이 해맑은 사람, 자연스럽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 매사 긍정적인 면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고 하지요. 무례한 사람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여유와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도 사랑받고 자란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성입니다. 요즘은 이런 특성을 자존감이라든가 자아회복력 같은 말로도 부릅니다. 아무리 미래를 잘 대비한다 해도 굴곡 없는 인생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아회복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특성이지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이른바 ‘금수저’와는 다릅니다. 많은 것을 받고 누렸지만,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하게 사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렵고 부족한 환경일망정 참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꾸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처음 싹트던 무렵에 초개와 같이 목숨 바쳐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부터 그랬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헌신 
순교자들 가운데 사랑받고 자란 첫 번째 본보기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부님은 증조부 때부터 신앙을 이어온 순교자 집안 출신입니다. 순교자 집안이라면 세상의 눈으로는 종교 때문에 풍비박산된 집안일뿐이지요. 물려받을 재산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증조부, 큰할아버지, 아버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박해를 피해 어린 시절부터 미리내 산골에 숨어야 했으니, 결코 ‘꽃길만 걸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신부님은 열다섯 나이에 멀리 마카오까지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서품 후에는 상하이에서 라파엘 호라는 작은 배로 거친 바닷길을 헤치며 귀국한 다음, 혼신의 힘을 다해서 교우들을 돌보다가 한 해 만에 체포됩니다. 조정에서는 신부님의 능력을 높이 사서 배교만 하면 벼슬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의연하게 순교의 칼을 받습니다. 
스물여섯의 꽃다운 사제가 하느님과 교우들을 위해서 이렇듯 아낌없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삶의 어느 대목에서도 윤택한 환경, 순탄한 길은 없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헌신하며 악을 선으로 갚은 모습은 신부님이 그야말로 ‘사랑받고 자란’ 사제임을 증명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이 처음부터 성인다운 자질과 풍모를 지니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이 사제가 되려고 마카오 신학교에 갔을 때,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두 소년도 함께 갔습니다. 그 셋 중에서 제일 공부를 못 해서 선교사 신부님들의 걱정을 샀던 분이 김대건 신부님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성인 사제로 만든 데는, 그분을 존경하며 사랑해 준 교회 공동체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서슬 퍼런 박해 속에서도 멀리 유학을 보낸 것부터가 사제를 키워내려는 공동체의 열망과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말해 줍니다. 게다가 교회 공동체가 신부님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통상 참수당한 죄인은 사형 집행 나흘 뒤에 연고자가 시신을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김대건 신부님의 경우에는 참수된 모래밭에 시신을 묻고 경비를 둬서 지키게 했습니다. 국사범의 시신이라 아예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게 했지요. 
그 와중에 신부님의 시신이라도 되찾고 싶었던 당시 열일곱 살의 복사 이민식 빈첸시오는 40일을 새남터 주막에 머물며 포졸들의 동태를 살핍니다. 미리 주모를 통해서 군졸들에게 술을 먹이고 잠들기를 기다려 시신을 파냅니다. 그리고 참수된 신부님의 머리는 삼베에 곱게 싸서 품에 안고 동체는 등에 업은 채로 험한 산길을 걷습니다. 혹여 들킬세라 밤에만 좁은 산길을 걸어서 닷새 만에 지금의 미리내 성지에 도착, 시신을 안장합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 부모라 해도 40일간 묻혀 있던 시신을 품에 안고 등에 업은 채 닷새를 걷는 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민식 빈첸시오는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박해를 피해 쫓겨 다니느라 가난과 무학에 허덕였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김대건 신부님을 도우며 그분을 각별히 따르던 이였습니다. 신부님이 한밤에 공동체를 방문해서 성사를 주고 가실 때는 어김없이 밤길을 안내해서 영접하고 모셔다드린 이였습니다. 이민식 빈첸시오는 그렇게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하며 그분의 인품과 덕행에 크게 감화를 받았고, 공동체가 신부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생생하게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신부님의 시신을 미리내 선영에 모시고 묘지를 돌보면서, 선종할 때까지 교회에 봉사하며 사셨습니다.

사제와 평신도
한국교회는 이렇듯 처음부터 교우들은 사제를 사랑으로 키워내고, 사제는 그런 교우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면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이런 사랑의 뿌리는 단연코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있습니다. 시편 제8편은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노래합니다. 신앙인은 인간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니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없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 7-8) 우리 신앙의 요체가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데 있다면,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하는 방법은 역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그 사랑을 통해서 서로를 ‘사랑받고 자란 이’로 키워왔습니다. 
‘시노드적인 교회’를 화두로 삼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서로 신뢰를 잃어버리고 사랑이 메말라서 힘들다는 푸념과 호소를 듣기도 하고, 또 열정적인 사목자와 교우들이 한마음이 된 미담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성된 성직자’, ‘처음부터 모범적인 공동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가 죄인임을, 다시 말해 모두가 하느님 앞에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키워주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구라도 ‘사랑받고 자라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