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는 1991년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2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9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 역사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부산가톨릭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교구 토현성당 주임사제로 재임 중이다.
-------------------------------------------
연중 제22주간(9월 1-7일)
순교자와 증거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몽 마르뜨(Mont martre)라고 불리는 ‘순교자의 산’이 있다. 초 세기부터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쌓아둔 언덕이었다. 여기서 ‘마르뜨’(희랍어로는 마르투스, μαρτυς) 즉 순교자란 용어는 본래 ‘증거자’(증인)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초 세기에는 증거자라는 통일된 의미로 사용되던 이 용어에서 언제부터 순교자란 말이 분리되어 나왔으며, 오늘날 증거자와 순교자라는 말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신약성경에서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요한 18,37), 사도 바오로가 스테파노를 지칭하여 “당신의 증거자”(사도 22,20)로 사용하고 있으며, 예수를 “충실한 증거자”(묵시1,5; 3,14)로 또는 “나락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살해된 두 증인”(묵시 11,3)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오늘날 의미의 순교자로 표현하지 않고 증거자로 사용하고 있다.
교부시대에 와서도 초기 대부분의 교부들은 아직 증인, 증거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2세기 중엽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하고 나타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2장 2절)에서 마르투스가 처음으로 ‘피의 증인’(순교자)을 뜻하는 낱말로 사용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순교의 개념을 다양하게 써왔다. 먼저 순교는 목숨을 바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로서 ‘붉은 순교’,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려고 감옥에 갇히거나 고통을 감수한 사람들은 ‘녹색 순교’라는 단어로 묘사되었다. 중세기 아일랜드 지역의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정결한 수도생활을 ‘백색 순교’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순교자를 규정할 때는 좁은 의미로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곧 순교는 실제로 죽임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해서 초래되어야 하고,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려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연중 제23주간(9월 8-14일)
한국천주교회의 성모 신심 역사
성모 신심은 한국교회의 창설 때부터 형성됐는데, 1791년 모친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진산사건으로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현 야고보는 순교하기 전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1798년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와 다음 해 순교한 방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했으며, 1801년 순교한 홍낙민 루카는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고, 김광옥 안드레아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기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확연히 보여주는 증거는 동정녀의 존재였다. 윤점혜 아가다를 비롯한 많은 동정녀의 출현은 정결을 강조한 주문모 신부와 당시 널리 보급된 서학서 ‘칠극’*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정에 대한 인식의 확산은 바로 성모 신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36년경에는 성모님 특별히 공경하고 그분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평신도 신심단체인 ‘매괴회’와 교우들이 자신을 성모님의 종으로 봉헌하며 특별한 보호를 청하는 ‘성의회’(聖衣會)가 설립되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의 주보로 정해줄 것을 교황께 요청해 184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승인받음으로써 조선의 성모 신심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광복절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그것이 곧 한국교회의 주보인 성모 마리아가 보살핀 결과라는 인식 아래 성모 신심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아울러 기존의 마리아 관련 단체와 더불어 외국으로부터 새로운 신심 단체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53년 3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셀 기도)에 이어 그해 5월에는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었다. 1976년에는 이탈리아로부터 마리아 사제 운동(다락방 기도모임)과 성모의 기사회가 도입되었으며, 이처럼 역사와 전통 속에서 성모 신심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신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
연중 제24주간(9월 15-21일)
현대적 의미의 박해와 순교
오늘날 종교의 존재 필요성이 의문시되고, 수많은 신흥종교와 반 그리스도적인 가치관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 신앙의 위기 시대에 현대적 의미의 순교를 생각해 본다.
오늘날은 칼을 들이대는 박해는 없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 쉬고 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에서 세례받은 신자 중 주일미사를 꾸준히 드리는 신자는 약 20%가 채 안 될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80%가 냉담 아니 배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해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냉담, 냉동(?)을 할까? 잘 생각해 보면 현대에도 박해가 있다.
우리 신앙인으로 하여금 성당에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미사에 빠지게 하는 모든 요인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박해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자들 간의 갈등과 무관심, 경제적 문제, 감염병 확산 같은 천재지변, 제도교회에 대한 불신, 성직자의 권위주의, 지인의 결혼식, 여행, 등산, 부부싸움, 자녀교육 같은 요인들을 들 수 있겠다. 이처럼 다양한 현대적 의미의 박해 요인들이 주일미사를 빠지게 하고, 또 미사를 거르면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부담으로 다시 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현대적 의미의 박해 요인들은 과거 박해시대에 신자들이 겪었던 신앙에 대한 위기 못지않게 위협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박해 요인들을 극복하고 더 우선으로 내 신앙을 앞에 둘 수 있다면, 그래서 관에 들어갈 때까지 주님을 따르는 확고한 신앙을 간직하고 지켜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꼭 피를 흘려야만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생각하고 우리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자신의 묵주와 십자가를 쥐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훌륭한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연중 제25주간(9월 22-28일)
레지오 단원들의 봉사와 연대
누군가 인생을 두고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인생은 B로 시작해서 C로 갔다가 D로 끝난다고 말했다. 여기서 B는 탄생을 의미하는 ‘Birth’를 뜻하며 마지막 D는 죽음을 뜻하는 ‘Death’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살아가는 모든 삶을 C라고 표현하는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선택을 뜻하는 ‘Choice’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여정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현재 모습 즉, 신앙심, 사고방식, 몸매, 얼굴 생김새, 지식 등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선택해 온 그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 자신의 삶도 내가 선택하는 대로 그렇게 결정지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선택 가운데서도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 가운데서도 ‘성모님 군단’의 한 단원으로서 복음선포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선택이다.
특히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Service)라는 가치보다 더 큰 개념으로 연대(solidarity)로서의 활동을 강조하고 싶다. 봉사를 영어로 표현하면 ‘for you’가 된다. 즉 ‘누구를 위해서’ 선행을 한다는 말은 먼저 내가 그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전제된다. 하지만 연대는 ‘with you’, 즉, ‘당신과 함께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같은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내가 지닌 물질도, 시간도, 마음도 함께 한다는 개념이 더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함께하고 나눈다는 생각으로 살 수 있다면 착한 일을 하고도 별 생색낼 일도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선택이 바로 하늘나라에 더 큰 복을 쌓는 일이라 할 것이다.
-------------------------------------------
연중 제26주간(9월 29일 -10월 5일)
성모송의 역사적 변천
레지오 단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성모송의 변천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성모송[성모경(聖母經)]-유방제**(여항덕) 신부 기록 대조
○ 한문 성모경/ ◎ (여항덕 신부 기록 성모송)-한글표기/ ◇ (여항덕 신부 기록 성모송)–알파벳 표기/ ☆ 천주성교공과(1960년대 이전)/ ■ 현재 성모송 순으로 표기한다.
○ 亞物 瑪利亞 滿被額辣濟亞者 主與爾偕焉
◎ 야우 마리아 만피 에라지아 쟈 쥬여이ᄒᆡ언
◇ Ia·u ma·ri·a, man·pi e·ra·ti·a chia, Ju·iü·i·hai·ien,
☆ 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주 너와 한가지로 계시니,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女中 爾爲讚美 爾胎子耶穌 幷爲讚美
◎ 녀즁 이위찬미 이ᄐᆡ자 여수 병위찬미
◇ Iu·zum·i·wei·jan·mi, i·t’ai·ja je·su, pin·wei·jan·mi,
☆ 여인 중에 너 총복을 받으시며, 네 복중에 나신 예수 또한 총복을 받아 계시도소이다.
■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天主聖母 瑪利亞 爲我等罪人 今祈天主 及 我等死候
◎ 텬쥬 셩모 마리아 위아등죄인 금긔텬쥬 () 아등샤후
◇ Tien·Ju·sen·mo ma·ri·a, wei·a·ten·Jui·in, chim·ke·Tien·Ju, k’ia a·ten·sa·hu,
☆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 亞孟/ ◎ 아믄/ ◇ A·men / ☆ 아멘/ ■ 아멘
--------------------------------------------
* 칠극이란 칠죄종, 즉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라는 7가지 죄에 이르는 것들을 극복하는 내용이다.
** 최근까지 알려졌던 유방제(劉方濟) 신부의 원명은 여항덕(余恒德, 1795~1854, 파치피코) 신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