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5월 그리고 6월에 함께 활동하던 레지오 단원 두 사람이 몹쓸 병인 암에 걸려 차례대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충격으로 레지오 활동은 물론 모든 신앙생활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몸과 마음이 냉담에 익숙해져 기도와 묵상이 낯설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단장님께서 신심 깊었던 막내 단원이 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며 저의 병문안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다 잊고 살아가던 저에게는 또다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한 사람도, 두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 암으로, 그것도 쉰 살이 겨우 넘은 젊은 사람이….
이제 그다음 차례는 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이기적인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동생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병원을 방문하고 무심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동생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저 자신도 모르게 성모님을 외면한 그간의 죄는 앞으로 몇 배로 더 노력하여 갚겠노라 호소하며, 앙상하게 야윈 동생의 고통을 부디 예수님께 전구 해주십사 기도하였습니다. 면목 없는 간절한 기도는 저도 모르게 성모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피정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신앙쇄신을 위한 2박 3일 성령 체험. 단장님과 함께하는 피정이었는데 제게는 이 상황에서 특별한 해결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피정에서 다시 성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백만 송이 장미 속에 나타나신 성모님께서 무언의 미소로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온몸이 땀에 젖고 경련을 일으키며 성모님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목이 쉬도록 성모님을 부르며 사죄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제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로 세운 뒤 눈물을 멈추게 하시고 그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으로 다시 기도하게 이끌어주셨습니다. 어느새 저를 그토록 괴롭혀온 불안과 공포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세 단원을 먼저 보내고 그들의 몫을 어떻게 대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명감이 저의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하였습니다.
피정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이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듣고 입을 축일 수 있는 과일을 사서 가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동생은 고마웠다는 한마디 문자를 남긴 채 서둘러 하느님 곁으로 가버렸습니다. 레지오 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했습니다.
저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그들의 기일에 위령미사 봉헌하고, 다시 시작한 레지오 활동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성모님 곁에 바짝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사람이기에 성모님께서 무한으로 주시는 평화와 안식의 그림자로 영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