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묵주
김광덕 도미니코 서울 동작동성당 평화의 모후 Pr. 서기

내가 늘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묵주는 향나무로 만들어진 낡고 꾀죄죄한 나무 묵주다. 주님께 갈 때는 나무와 실로 된 묵주가 더 좋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어느덧 내 나이가 팔순을 지나며 5월 어느 날, 또 부질없는 욕심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을 괴로워하다가 아침 일찍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성당을 찾아가 십자가의 길을 걷고, 나오는 길에 뻣뻣한 실로 엮어진 나무 묵주를 새로 샀다.
본당신부님께 축복받고 나오는데, 수녀님이 보시며 “기도 많이 하면 뻣뻣한 묵주 끈도 부드러워져요” 하신다. 자주 불순명하여, 목이 뻣뻣한 사람처럼 속 좁은 나를 벌써 알아채셨을까?
참회의 눈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밤에 잘 때도 손에 쥐고 잔다. ‘언제나 주위를 정리하고 주께서 부르시면 ‘네’하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이 나무 묵주랑.’
저는 함경도 북청 신포리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습니다. 8.15해방이 되자 엄마, 아빠는 두 아들과 또 한 달 박이 나를 업고 피난 행렬에 따라나섭니다. 추위, 굶주림과 총성에 가슴 조이며 한탄강을 건너 서울까지 오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벌 떼같이 떠나온 사람들, 꿈같은 재회 기다리며 80년이 흘러가는 동안, 내가 40세가 되던 해 췌장 절개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게 되자 엄마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나를 성모님께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에서 받은 세례성사이지만, 나는 위험한 일이 닥칠 때면 은총으로 엄마 품 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이시고, 나의 ‘엄마’인데 이유를 불문하고 그분의 보살핌에 안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제 내 건강은 많이 좋아졌으나 마음은 다시 세속적으로 기울어, 매일매일 내 삶 안에 찾아오는 불청객, 십자가를 거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항상 내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님, 당신께 매달리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