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성지 순례길에서
윤상선 토마스 광주 화정4동성당 천사들의 모후 Pr.

파가저택(破家瀦澤) 형을 받아 집을 부순 웅덩이에 
하늘이 시퍼렇게 떠다니고 나무들은 거꾸로 처박혀 있습니다.

물 위의 수련은 눈뿌리 타는 눈동자로  
말할 수 없는 그날의 참상을 내게 말하는 듯합니다.

고작 내 안위만을 위한 옹졸한 기도는 
당신 큰 뜻에 비하면 쉴 곳 없이 떠도는 먼지와 같습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저는, 백 가지 기쁨으로 하나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왜 세상의 올바른 울림통이 되지 못했을까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기도 소리가 내 가슴을 찢습니다.

허세뿐이었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용기로 저를 자성(自省)하게 하소서.

광풍의 피바람에 혼절한 목숨들이 
꿈꾸었을 오늘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죽음도 이렇듯 애틋한 초남이성지에서
다시 태어나는 새날을 품어봅니다.

평화의 세상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사랑의 씨앗 하나 심는 기도로 주님을 부르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