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저 안에 베드로 사도의 의자가 있나요?” 처음 로마 유학 갔을 때, 선배 신부님의 안내로 베드로 대성당 안을 순례하다가 네 분의 교회 학자인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 아타나시오가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의 의자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제가 감탄하며 했던 질문입니다. 성 베드로가 로마에서 전교 활동을 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의 조각들을 5세기경에 모아 그 위를 상아로 장식해 만든 것이 시초이며, 현재의 작품은 조각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가 만든 것으로 1666년 1월 16일에 현재의 자리에 놓은 최초의 로마의 주교좌이며 교황좌이지요.
성령 강림 이후에 주일에 모인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성찬례를 주례하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교회는 그분의 앉았던 평범한 가정집 식탁 의자를 영광스럽게 보관하며 기억합니다. 이 의자는 로마의 주교좌로서 전례에서 “회중을 주도하고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드러내”(로마미사경본 총지침, 310항)는 ‘주례 사제의 좌석’이며 ‘모든 이의 일치’의 상징입니다. 밀레비스의 옵타토 성인(+387년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 도성에 있는 베드로에게 반석이라 불렀다는 이유로 주교좌가 처음 부여되었습니다. 이 주교좌 안에서 모든 이가 일치를 보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권위와 일치의 상징인 주례석!
예수께서는 자리의 권위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마태 23,1). 김광현 교수는 ‘성당, 빛의 성작’에서 “이러한 권위는 하느님께 받은 것이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권위의 자리를 나타낼 때 사용한 자리가 그리스어로 카테드라(cathedra)이다.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인 카테드라는 종종 작은 단 위에 놓이며 사제와 부제가 이 의자를 둘러쌓다. 옛날에는 주교가 강론대나 독서대가 아닌 이 의자에 앉아 강론을 했다”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주교좌뿐 아니라 주례석에서 강론을 할 수 있습니다(로마미사경본 총지침, 136항 참조).
전능하신 하느님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
주교좌(主敎座)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통치권을 표현하고 특히 주교의 정확한 역할, 곧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역할을 드러냅니다. 이것을 이미지로 표현한 ‘전능하신 하느님’(Pantocrator) 또는 ‘주님의 영광’(Maiestas Domini)은 후진(앱스)에 위치한 주교좌 위에 표현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좌석에 앉아 왼손에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 가르치는 동작을 표현합니다. 때로는 ‘거룩한 책 또는 보석으로 장식된 영광스러운 십자가가 놓여있는 빈자리의 모습’(Etimatia, ‘준비’라는 의미)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없다는 것은 그분이 세상 끝날에 심판자로서 다시 오실 때(마태 24,30; 26,64)까지 현존하겠다는 약속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주교좌 위의 반원형 천장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주교의 이중적인 기능, 곧 교의와 윤리에 대한 가르침과 통치권을 알려줍니다.
주교의 존엄성과 의무를 드러내는 주교좌!
콘스탄티누스 황제(272-337) 치하에서 시작된 주교의 존엄성에 대한 탁월한 개념은 주교좌에 대한 명예로 눈에 띄게 강조되었습니다. 전례 역사가인 마리오 리게띠는 ‘전례 역사 Storia liturgica+’ 1권에서 주교좌와 관련된 특별한 예식인 착좌식(Inthronisatio)과 그곳에서 행하는 주교의 법정(Episcopalis audientia)에 대해 알려줍니다. 318년 칙령을 통해 콘스탄티누스는 주교에게 실제 시민 사법권을 부여했으며 이어진 그리스도인 황제들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각 주교는 때때로 자기 교구의 주요 본당에서 분쟁 당사자로부터 민사 분쟁을 포함한 분쟁을 듣고 정당성을 논의하고 판결할 수 있는 ‘주교의 사법권’을 주교좌에서 행함으로써 주교좌는 주교의 사목적이고 법적인 의무를 드러냈습니다.
화려해졌던 주교좌!
초기의 주교좌는 약간 높은 등받이와 값비싼 장식으로 꾸며진 천으로 덮인 팔걸이가 있는 원로원의 의자와 유사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바실리카양식의 대성당에서 전례 거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11~12세기까지 주교좌는 일반적으로 돌이나 대리석이고 모자이크나 조각으로 풍성하게 장식되었으며 높은 등받이가 있고 중앙에 큰 원형의 반암(斑岩)이 박혀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세 개 이상의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으며, 주교좌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있는 사제 공동 좌석들이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카롤링거 시대의 ‘로마 예식’(Ordo Romano) 제5권에서 성찬례 동안 주교는 후진이 아니라 제대 오른쪽에 있는 주교좌에 앉았다고 언급합니다. 한동안 주교좌는 이동식 왕좌 형태로 제작되고 그날의 전례력에 따라 전례색이 들어간 값비싼 커버로 덮여 있어야 하고, 주교좌 위에 발타키노를 설치하고 주교좌에는 쿠션이 놓여있어야 했습니다.
반면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주교좌와 함께 주례석을 왕좌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고, 주교좌 위에 발다키노가 이미 있는 것은 보존하지만 새로 설치하는 것을 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는 제단 중앙으로 옮겨졌고, 주례석은 “제단의 조금 높은 데에 있으면서 신자들과 마주 보는 곳”(로마미사경본 총지침, 310항)에 배치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사람들과 같이 되신”(필리 2,7) 주님의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는 표징이라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주교좌에서 시작된 주례석의 우월한 위치는 ‘주례의 장소’로써 주례 사제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교회 헌장 28항) 믿음의 백성을 이끌고, 그들의 기도를 주도하며,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주례석이 ‘조선경국전’에서 정도전이 말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곧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그곳에 앉는 사람에게서 그런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뿜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대성당 판토크레아토르 12세기
- 이탈리아 남부 갈라브리아 지역 Santa Severina 교구 주교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