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결혼 생활의 위기 극복하는
지혜와 태도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 안동교구

오래된 좋은 부부 – 신의, 인내, 기다림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날 오래된 부부들 가운데서 젊은 시절보다 부부의 사랑을 더 성숙시켜 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때때로 부부 공동체가 생존을 위한 경제 공동체, 자녀를 매개로 한 형식적 공동체, 관습적이고 관행적인 계약 공동체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저 무늬만 부부인 상태로 머물”(‘사랑의 기쁨’, 232항)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부부 관계의 성숙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대다수 부부는 혼인의 여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쌓아온 속 깊은 사랑과 정(情)의 무게를 통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부의 여정을 함께 걸어갑니다. 하지만, “숙성된 좋은 포도주와 같은 사랑을 하는 부부”(231항)를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감정을 시들게 하고 권태를 낳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새로워지고 성숙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 속에서 사랑을 숙성시켜 가는 오래된 좋은 부부에게는 신의라는 미덕이 내재하고 있고, 또한 서로에 대한 신의 안에는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좋은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신의와 인내와 기다림의 덕을 키워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수련과 시련 속에서 성숙해지는 부부 사랑
성숙한 사랑을 나누는 좋은 부부 생활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수련을 쌓고 많은 시련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에서 수련이란 부부 생활의 여정에서 서로를 늘 새롭게 볼 줄 아는 일입니다(231항). 즉, “모든 새로운 단계가 열어 주는 가능성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232항)는 일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참다운 부부의 삶은 죽는 날까지 서로를 배우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수련을 통해 완성되어 갑니다. 사랑도 공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랑은 위기와 시련 속에서 성장합니다. 부부 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위기는 부부가 서로 더욱 가까워지거나 혼인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232항). “모든 위기에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232항). 당황하거나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위기를 직시하고 견뎌내며 극복할 줄 아는 용기가 요청됩니다. 위기를 마주하고 그 도전에 슬기롭게 응대하는 일은 부부 생활의 필수 요소입니다.

위기에 반응하는 방식
위기가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흔히 방어적 태도를 택하기가 쉽습니다. 즉, “문제 자체를 부정하거나 감추고, 문제의 심각성을 평가 절하하거나 세월에 내맡기는 방법을”(233항) 선택합니다. 위기를 회피하고 방어적 태도로 응대하다 보면, “부부 유대는 점점 악화되고, 친밀함을 망치는 단절이 깊어집니다”(233항). 결국 부부 사이에 대화가 사라지고 서로에게 낯선 이가 되고 맙니다(233항).
위기의 시기에 대화가 단절되고 “스스로 고립되고 소심하고 기만적인 침묵 속으로”(234항)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면 부부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위기를 함께 마주하여야 합니다”(234항). 위기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소통은 평온한 때 배워야 하는 엄밀한 의미의 기술이며, 힘든 때 이를 실천하여야 합니다”(234항). 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부부가 대화와 소통하는 훈련과 수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위기의 내용들
부부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위기들은 다양합니다. 혼인 초기에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위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는 새로운 정서적 도전을 야기하는 자녀 출산이라는 위기, 부모의 습관을 바꾸어 주는 자녀 양육이라는 위기, 부모에게 많은 힘을 필요로 하며 부모가 평정심을 잃고 서로 자주 대립하게 되는 자녀의 사춘기라는 위기가 있습니다. 부부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빈 둥지’ 위기, 부부 각자의 나이 든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많이 돌보아야 하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데에서 오는 위기가 있습니다”(235항). 
부부 생활의 여정에서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배우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꿈꾸었던 것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237항) 갖는 감정들이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자신이 상대방을 가장 필요로 하였을 때 그가 곁에 없었거나, 자존심이 상하였거나, 막연한 두려움”(237항)이 위기를 촉발하기도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 정서적, 사회적, 영적 어려움 같이”(236항) 부부 각자가 겪는 개인적 위기 역시 부부 생활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부부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기 전의 “지난 시절에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관계를 맺는 방식에 성숙하지”(239항) 못하다면 부부 생활에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그에게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될 수도 있습니다(240항).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하거나 “신랄한 비난, 상대방을 탓하는 습관, 감정의 논리, 환상의 논리에 사로잡힌 사춘기 단계에 고착된 사랑”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습니다(239항).

소통과 친교의 사랑을 향하여 – 겸손하고 정직한 대화
부부 생활의 위기들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고, 또 개별적으로 노력해야 할 영역도 있습니다. 함께 성숙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성숙도 요청됩니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하면 누군가와 함께 바로 서지도 못합니다.
성숙한 사랑의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치유의 필요성을 깨닫기,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은총을 간절히 청하기, 도움을 받아들이기, 긍정적 동기를 찾기, 모든 것을 늘 새롭게 시도해 보기가 필요합니다”(240항). “위기가 찾아오면 용기를 내어 위기의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합의에 대하여 다시 논의하고, 새로운 균형을 발견하고, 함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238항)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말과 몸으로 소통하고 친교를 나눕니다. 오래된 부부일수록 무엇보다 말의 나눔과 소통이 필요합니다. 소통과 친교의 핵심은 말의 나눔, 즉 정직한 속내를 나눌 수 있는 대화입니다. 말씀이 하느님이시라는(요한 1,1), 생명의 말씀(1요한 1,1)이라는 요한 복음사가의 선언은 어쩌면 이를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겸손하고 열린, 정직한 대화만이 부부의 사랑을 성숙시켜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