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춘옥 미카엘라 자매님(77세)은 안동교구 봉화성당(주임신부 사공균 알로이시오)에서 보배로운 신자이다. 신구약 성경을 3년 9개월 동안 완필하였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을 두 번이나 필사하였으며, 열두 달 성경 통독을 한 후 그 느낌을 기록하여 신부님 사인을 받아 감사미사 드리는 일을 열두 달 동안 빠트리지 않고 실천해 신부님과 수녀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느뇨?”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56문답과 사도신경, 주모경을 다 암기해야만 했던 시절, 프랑스 신부님 앞에서 한 문답이라도 답하지 못하면 세례성사를 받을 수 없었기에 길을 걸으면서, 잠자리에서, 청소를 하면서 늘 중얼중얼 문답교리책을 암송하여 힘들게 세례를 받았기에 기쁨이 컸다. 1970년 12월에 세례를 받고 2년 후 견진성사를 받았다.
일찍이 홀로 오 남매를 키우신 친정어머님이 고상과 성모님을 모신 기도상 앞에 몇 송이 꽃을 꽂고 선종하실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셨던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다워 어머니처럼 늘 기도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짙었다. 주님이 선물로 주신 아침에 언행을 평화롭게 이끌어달라고 기도하고, 하루를 열심히 살고 난 저녁에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성령께 바치는 28가지 기도와 자비의 기도를 매일 바친다. 전례 꽃꽂이를 할 때면 아픈 사람을 지향에 두고 기도와 묵상하고 꽃을 꽂고 나면 마침기도를 바친다. 기도의 힘이었던지 남편과 네 남매, 지금은 사위, 며느리, 친정 올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모두 신자가 되었다.
꾸준한 선교로 입교 30명에 대녀가 30명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한 지 45년째로, 쁘레시디움 서기, 부단장, 단장으로 활동하였고, 지금은 예언자들의 모후 꾸리아 단장이다. 2009년 안동교구 선교학교를 수료 후 선교회원이 되어 봉화 장날이면 회원들과 가두선교를 하였고, 이란 마리아 자매와 한 조가 되어 물야면 골골이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사람을 입교시켜 안동교구 사도들의 모후 레지아 50주년 때 선교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입교시킨 사람이 30명이고, 대녀가 30명이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성경 구절을 늘 가슴에 담고 다녔다. 교리 봉사를 하다 보니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65세의 늦은 나이에 통신 신학 과정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하여 6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교리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중간에 자퇴하거나 포기한 사람이 많았지만, 동계와 하계 출석 연수도 빠짐없이 참가하였고, 주관식과 서술형 답안도 열심히 적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닌, 꾸준히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듯이 제가 영광스런 졸업을 할 수 있었어요.”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봉사해 왔다. 가족상담 2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상담을 하였고, 봉화군청 한샘회와 봉화군 상운면에서 한지공예반을 지도했다. 무료로 봉사했는데, 사례를 받으면 성당 봉고차와 장례미사에 쓸 관 덮개 사는데 봉헌했고, 대림 등을 제작 판매하여 1천만 원을 성전 건립에 봉헌했다. 절약하며 모은 돈을 틈틈이 저금통에 넣어서 연말이면 어려운 할머니 집에 연탄을 사드렸고, 이런 일은 혼자서도 실천하고 가족과 함께하기도 했다.
교리교육은 무척 즐거웠다. 십계명, 칠성사를 가르칠 때도…. 교리 받은 사람들에게 레지오 교본을 사서 선물했더니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바라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려고 하지 않고 3년, 4년이 될 때까지 계속하고 주보와 가톨릭신문을 주었어요. 작년 한 해 쉬는 교우 여섯 명을 회두했는데 그중에는 20년간 냉담했던 친척 동생도 있어요. 예비자를 인도하면 같이 교리를 들었어요.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 지향, 그 목표대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을 모르고는 절대로 못 살아요.”
성체를 모시고, 성체의 힘으로 복음 전해야
전례 꽃꽂이는 9년째이다. 부군 권달홍 스테파노 형제님은 제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깨진 화분에 얼굴과 손목을 베어 몇 차례 성형 봉합수술을 한 아내를 5년째 옆에서 보조하고 있다. 이 마리아 자매도 차량 봉사를 해주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겨울에도 7시 30분이면 꽃꽂이를 하고, 교중미사 해설과 평일미사 독서를 맡아 하며, 주일마다 하느님 일을 하느라 성당을 멀리 떠나지 못하니 하느님이 뽑아 세우신 보배이고 참 일꾼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우리의 평범했던 생활을 빼앗아갔어요. 교중미사 때 신자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함께 미사 드리고, 당연한 줄 알았던 성체를 모시지 못했던 지난 3년.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열심히 성체를 모시고, 성체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서 복음을 전해야 해요. 신앙은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닮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앙은 덕을 키우는 것이며 거룩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에요. 성경을 통독하고 필사를 많이 했더라도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아요. 마음을 다해 말없이 봉사하다 보면 반드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결과를 주신다고 믿어요.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주셨다.(이사 4,9)’라고 생각합니다.”
지상의 가정과 신앙 가족을 위하라는 하느님의 요청을 받고 기껍게 수행한 미카엘라 천사를 만나고 온 날은 하느님의 영광에 고개가 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