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스스로 규율에 매이도록
(체스터턴의 울타리)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의 일부를 중국인 두 명이 훼손한 사건이 2023년에 있었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기로 계약한 두 사람이 지름길을 만들어 굴착기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장성에 있던 기존의 구멍을 크게 넓혀 통로를 만든 것이다. 이곳은 만리장성 중에서도 토성과 봉화대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컸다. 두 사람이 허문 장성의 폭은 차 두 대가 교차 운행할 수 있는 규모로 만리장성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들은 문화유적을 파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만약 길을 가다가 앞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만났다고 하자.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누가 여기에 왜 울타리를 쳤는지 알지 못하지만 방해되니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울타리가 거기 있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하겠는가? 이 질문은 영국의 작가이며 철학자로 ‘브라운 신부’라는 시대를 초월한 명탐정을 탄생시킨 ‘길버트 체스터턴’(1874~1936)이 1929년 수필 ‘The Thing’에서 발표한 비유이다. 그는 이 비유를 통해서 ‘기존의 무언가가 만들어진 이유를 알기 전에는 그것을 함부로 바꾸거나 없애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체스터턴의 울타리(Chesterton Fence)’라고 한다. 
이 비유를 잘 드러내는 사건이 있다. 1950년대 후반에 마오쩌둥의 지시로 중국에서 일어난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네 가지 해로운 동물, 즉 참새, 쥐, 모기, 파리를 제거하는 운동)이다. 이는 유해 동물을 잡자는 운동이었는데, 비교적 다른 동물에 비해 참새가 잡기 쉬워 ‘참새박멸운동’이 되었다고 한다. 참새를 잡기 위해 전 인민이 동원되어 참새가 내려앉지 못하도록 냄비와 후라이팬, 북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참새 둥지도 허물고 알도 깨뜨렸다. 또 잡은 참새의 부피에 따라 상을 주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참새는 멸종 위기에 처했고 천적이 없어진 메뚜기떼를 비롯한 해충들이 중국 전역을 덮어 쌀 생산량이 오히려 급감했다. 그 후 3년 대기근으로 수천만 명의 인민들이 굶어 죽었다. 그때야 비로소 중국 지도부는 참새의 이로운 점을 깨닫고 소련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공수했다고 한다.

만들어진 이유를 알기 전에는 그것을 함부로 바꾸지 말라
체스터턴의 울타리가 변화나 개혁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들-그것은 어떤 제도나 법, 체제 등일 수도 있다-을 만났을 때, 그것들은 과거 어떤 상황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고민하여 선택한 결과임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충분히 확인되면 그때 쓸모를 다한 울타리를 치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과거에 유용했던 것들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P형제는 나름대로 성공한 예술가였지만 평소 술을 좋아하며 자유롭게 생활한 탓인지 50대 중반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절망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는 환시를 경험하고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여인을 성모님으로 믿게 되어 바로 세례받고 대부를 따라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그런데 레지오의 규율과 규칙이 자신을 옥죄는 느낌에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레지오의 첫인상은 답답함이었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과 규율들이 많을 뿐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어 마치 저를 틀 속에 가두려는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저의 답답함을 알아챈 선배 단원들의 친절한 설명과 교본 공부가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레지오의 규율은 틀이 아니라 질서를 주기 위한 장치이고, 질서야말로 신앙에도, 일상생활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제가 건강을 잃은 것은 무질서한 제 생활 때문이었거든요. 이제 저는 레지오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완덕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재 화가 피카소의 작품이 데생의 기본 없이 탄생한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입니다.”

레지오는 단원들이 모든 세부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정신을 지닌 단체
레지오가 본당의 여느 단체와 다른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레지오는 규칙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질서 체계를 마련한 조직일 뿐만 아니라 단원들이 모든 세부 규칙을 철저히 지켜 나가는 정신을 지니도록 하는 단체라는 것이다.(교본 109쪽 참고) 그러므로 교본에는 레지오는 규칙대로 충실히 운영되어야 하며 아무리 사소한 사항이라도 바꾸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교본 195쪽 참고) 이는 ‘레지오는 그 조직과 규율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삭제하거나 변경하면 균형이 깨져 무너질 수 있는 체계’(교본 19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단원은 교본을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교본에는 단원들이 성모님의 군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 사항들이 설명되어 있기에, 교본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레지오 활동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교본 299쪽 참고) 레지오에 대한 매력을 알지 못하거나 잃어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교본의 정신을 모르거나 잊어 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교본이 시대에 맞지 않아 임의로 변화를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내가 교본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한편 “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세상에 많은 것은 변한다. 우리의 사고방식, 제도, 관습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변화가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제대로 된 변화를 위해 애써야 한다. ‘하느님의 속성과 행동이 비록 우리 안에서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분의 본질은 바로 질서와 조화’(뉴만:일치의 증거와 수단인 질서, 교본 251쪽)라는 말을 명심하며, 본질은 유지하되 본질이 아닌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이를 변화시키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본질이 바뀌는 현상인 변질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니 ‘이해하기 전까지는 부수지 마라’는 체스터턴의 권고는 변화 이전에 먼저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신앙 안에서 무언가 이루어 보고자 헌신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규율에 매이도록 만든다면, 세상에서 비할 데 없이 큰 힘이 그 안에 항상 작용하게 된다.’(교본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