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불교를 믿으신 어머니를 따라 염불소리를 들으며 성장을 했던 제가 성당 앞을 오가며 두 팔을 벌리고 인자로이 서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며 막연히 천주교회를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성당의 담장 높이만큼 제가 성모님을 만나기에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만났을 때 종교가 천주교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성모님과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에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그 누구의 축하보다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에 성당에서 혼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바라보기에는 너무 멀게 계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갖가지의 핍박과 고통을 받으며 시련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하느님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주 작은 아기였기에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앞섰지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울다가 살포시 잠이 들었는데 ‘띵동’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으신 성모님이 집 앞에 서 계셨습니다. 너무 놀라서 “성모님!”하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성모님은 저를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꽃을 바쳐라” 이 한 말씀 남기시고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혀서 한동안 잊히지 않았지요. 하지만 어리석은 저는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과 점점 멀어져가는 냉담 생활을 하던 중 반석동으로 이사 와서 냉담을 풀고 레지오에 입단하여 천사의 모후 Pr. 단원이 되었습니다. 전임 단장님의 이사로 저에게 단장을 맡으라는 지명을 받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딸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단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늘 제 곁에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순명을 하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쁘레시디움을 이끌어가면서 걸림돌이라 생각했었던 딸이 오히려 도와주고 힘이 됩니다. 나이가 많아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단원이 없었는데, 딸이 저희 레지오에 입단해서 사업보고 작성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옷을 입었기에 어디를 가나 모든 분들이 특별히 기억해 주시고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 주셔서 신앙 속에서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성모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사 드릴 때마다 신부님께서 가져다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셔도 되지만, 저는 ‘하느님께 딸을 봉헌한다’라는 생각으로 엄청난 정성을 들여 성전 앞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제가 부축하지만 조금만 자세가 바뀌어도 쓰러질 수 있어 딸도 굉장히 긴장하며 힘들게 나가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꿈결에 저를 찾아와 “꽃을 바치라”라고 말씀해 주신 성모님 덕분에 장애를 가진 딸이 저에게 짐이 아니라 ‘선물’이고 ‘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모상을 보면서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었고, 20대에 레지오 활동을 시작해 60대가 된 지금까지 성모님은 늘 저를 위로해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의 본향인 하늘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신앙의 모범인 성모님처럼 하느님 뜻에 순명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꽃처럼 예쁜 딸을 선물로 주셔서 미사 드릴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예쁜 꽃인 손미래 헬레나’를 제단에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