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7,7)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얼마 전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주말 피정에 지도를 맡아 배론성지에 다녀왔다. 성지를 따라 흐르는 개울을 보자 보좌신부 때 중고등학생들과 함께한 여름 캠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던 여학생 여럿에게 붙잡혀 차가운 물 속에 내동댕이쳐진 사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때 나도 응징한다고 5명 중 3명을 물에 넣어 결국 우리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다. 그러고 나서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여고생이던 아이들은 모두 중년이 되었으리라.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님께서 배론에 찾아오셔서 잠깐 말씀을 나누었다. 주교님은 “1년간 프로그램을 한 달에 한 번꼴로 운영하는데 20~30%는 매회 계속 오시는 신자들이다”라고 했다. 내가 “피정 마니아들이네요” 하자 “맞다”라며 같이 웃었다. 살다 보면 운동이나 활동 등 취미생활을 하기 마련인데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피정에 습관적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참 좋은 취미요 습관인 것 같다. 피정 3일 동안 주로 기도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전국 각지에서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이라 피정에 임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몇 년 전 다른 주일학교 친구들과 1년에 한 번쯤은 만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병자성사를 청했다. 어릴 때부터 아주 건강한 친구였고 탄탄한 기업의 CEO로 열심히 산 그였다. 성장한 딸 둘이 있는데 자신이 떠나가기 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자신은 평생 착하고 살려고 노력했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느님께 섭섭하다”라고 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후배는 방 밖의 식구들을 의식해서인지 한참을 소리죽여 흐느꼈다. 나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신부님! 지난 일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도 많겠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목이 메어 위로의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저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것을 절박하게 느꼈다.

신앙인은 늘 기도를 통해 영성의 양분 섭취해야
사도 바오로는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기도는 우선 하느님의 능력을 받아 악의 유혹을 이기며 세상을 이기게 한다. 신앙이 있는 곳에 기도가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신앙이 있다. 신앙인은 궁극적으로 기도하는 존재이다. 기도하지 않게 되면 신앙을 잃어버린다. 
신약에서 대표적인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구하여야 할 것인가를 본보기로 보여 주셨다. 크게 두 부분인데 전반부는 하느님과 관련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빌면서, 후반부는 인간과 관련해서 현재를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을, 과거를 위해 용서를, 미래를 위해 악의 유혹에 들지 않게 기도하게 하셨다 
흔히 기도는 신앙의 숨에 비유한다. 마치 인간이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신앙인은 늘 기도를 통해 영성의 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영적 기운, 영적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다. 이렇듯 기도는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가는 수단 방법이다. 나의 기도를 되돌아보면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한 기도가 대부분이다. 특히 위험이나 어려움에 빠졌을 때 열심히 기도한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기도를 하지 않은 적이 너무 많다. 달라기만 하고, 조르기만 했지, 실제 이루어지면 내 것만 챙기고 사라지는 이기심을 갖고 많은 기도를 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면 자기의 뜻은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보통 겸손한 기도를 통해 지혜를 갖게 된다(지혜 8,21).
특별히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아프간에서 무장 세력에 피랍되었던 학생 중(피랍 사태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극한상황에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마음속으로 계속 되뇐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 한계상황을 쉽게 넘어갔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공포심도 적고, 여유가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중국 공산당에 갇혀 중국 땅에 수십 년 억류되었다 풀려난 사제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고 라틴어를 기억하는 것은 독방에서도 마음속으로 매일 기도한 까닭이었다고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며, 신앙의 전체이고 도구
하느님께서는 꾸준히 기도할 때 응답하신다. 과부의 간절한 호소와 이를 들어 준 재판관의 비유에서 우리는 이 과부의 집중적인 호소를 배워야 한다. 한두 번 기도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루카 18,1-8). 예수님도 자주 기도하셨고, 때로는 산 위에서 혼자서(마태 14,23), 때로는 사람들이 찾고 있을 때 외딴곳(마르 1,35)에서 기도하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휴식과 영적 기운을 채우고,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라고 규정짓는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 생활을 중요시하고 신앙인의 삶 자체가 기도이어야 하고,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것이며 신앙의 전체이고 신앙의 도구라고 가르친다. 듣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것도 대화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졸아도 된다고 하시며 신자들을 안심시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생각만 해도 좋다. 아버지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라니.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성모님의 전구를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