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작은 해안 마을로 휴가를 떠난 미국의 한 사업가가 그곳에서 어부 한 명을 만난다. 어부의 작은 배 안에는 큼지막한 물고기 몇 마리가 있었는데, 어부가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않자 사업가는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와 낮잠을 자지요. 그리고 저녁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 치면서 놀지요.”라고 했다.
이에 사업가는 자신이 하버드에서 MBA를 받은 사람이라 소개하며 더 많은 고기를 잡아 큰 배를 사고 가공 공장을 세우는 등 사업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어부가 “그런 다음에는 뭘 하지요?”하고 묻자 사업가는 “여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지요. 멕시코의 한적한 해변에 별장을 짓고, 가족들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줄 수도 있고, 낮잠을 자도 됩니다. 푸짐한 저녁 식사 뒤에는 마을에 나가 술도 한잔하고,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에 어부는 말한다. “사업가 양반, 보다시피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요.”
‘슈드비 콤플렉스(should be complex)’라는 것이 있다. 이는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카렌 호나이가 주장한 것으로 콤플렉스(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의 일종이다. 즉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뜻의 ‘슈드 비(should be)’에 콤플렉스가 붙은 단어로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자신으로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대체로 이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삶의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쉬거나 놀고 있는 자신을 보면 한심하게 생각되거나 본인이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에 불안해진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촘촘한 계획을 세운다. 휴가도 잘 쉬기보다는 다양한 일을 하고자 하며, 그런 삶이 잘 사는 것이라고 여긴다. 거기다 자신의 일상을 SNS로 드러내 그에 대해 사람들이 칭찬하면 그 만족감으로 더 열심히 생활하고자 자신을 다그치기도 한다.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하는 ‘슈드비 콤플렉스’
부지런한 한국인들에게 유독 많이 나타난다는 이 콤플렉스는 불안과 불안정, 경쟁 등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콤플렉스 또한 늘 부정적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더욱 강하고 멋지게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콤플렉스 또한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문제는 모든 일을 의무처럼 여겨 강박적으로 끊임없이 생산적 활동에 전념하니 항상 지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주변의 인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게다가 몸이 힘들수록 자신이 제대로 잘살고 있다고 여기며 힘듦을 보람으로 착각하여 휴식 금지 행동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니 자칫하면 번 아웃(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꼼꼼한 성격의 유아 영세자인 K형제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중년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업이 자리 잡을 때쯤 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놀란 그는 그동안의 냉담을 풀고 성사 생활과 치료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크게 회의를 느끼고 탈단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신부님과의 면담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저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봉사는 대충 하고 자리만 탐내며 목에 힘주는 사람이나, 의무는 다하지 못하면서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을 볼 때 화가 치밀었습니다. 게다가 ‘너무 열성적이다’ ‘잘난 체를 한다’라는 등 저에 대한 부정적 소문에 봉사의 기쁨은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우리의 구원은 자격에서 오는 게 아니라시며 무조건적인 하느님 사랑에 머물기 위해 기도를 더 열심히 하기를 권하셨습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기도를 하니 봉사가 즐거워졌습니다. 이제 기도는 제게 하느님 품 안에서 쉬는 시간이며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시간입니다.”
단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되 그 지향을 확고히 해야
교본에 ‘레지오 단원은 모든 임무에 최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교본 61쪽)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마태 22, 37)고 하셨으니 우리는 ‘레지오에 마음의 눈을 돌려, 자신의 취향을 억누르고 배당받은 활동을 수행’(교본 113쪽)하는 등 늘 활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열성이 지나친 나머지 초조해하거나 또 어떤 때는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마는 양극단 사이를 오가’(교본 36쪽)게 되고, ‘마음이 초조해질 때, 영혼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좁아지며 –중략- 결국 이러한 초조가 좌절을 부르’(교본 452쪽)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교본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활동과는 동떨어져서 방관만 하고 계신다고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 때문’(36쪽)이라고 강조한다. 즉 나의 활동에 하느님이 빠져 있게 되면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지오 활동에 최선을 다하되 초조와 불안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교본에서는 적은 양의 보리빵과 물고기가 기적을 일으킨 것처럼 미소하지만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기를 권한다.(교본 69쪽 참조) 즉 ‘성모님이 즐겨 받으시도록 마음을 향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교본 69쪽)라는 것으로, 단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되 그 지향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슈드비 콤플렉스 극복 방법 또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도 된다’라는 생각의 전환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성모님께 봉헌하자. 그리하여 “성모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고, 성모님과 더불어 모든 시련을 견디어 내며, 성모님과 더불어 일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고, 성모님과 더불어 쉬어라.”(토마스 아 캠피스; 교본 49쪽)라는 말을 기억하고 행하자. 그것이야말로 최선을 다하되 지나치거나 지치지 않고 성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최선은 ‘성모님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어내, 필요하다면 기적까지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교본 61쪽)
‘레지오 단원들은 늘 그러했듯이 자신의 영혼이 성모님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며’(교본 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