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연중 제14주간-제17주간
김영수 헨리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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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헨리코 신부는 1992년 사제서품을 받고 영국에서 영성심리상담, 영적 지도를 전공했다. 전주교구 사목국장과 총대리를 역임하고, 천호성지와 치명자산 성지에서 순교영성현양을 위한 사목활동을 했다. 현재 치명자산 성지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영성심리 강의, 피정동반, 영성상담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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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7월 7-13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
    
루카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시는지를 생생하게 그려서 보여 주는 한편의 성화입니다. 
‘은총’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치유해 주고, 우리 마음에 믿음을 샘솟게 하며, 우리를 진리에 공감하게 하여,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참된 사랑의 표현이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샘솟아 지상에서 꽃을 피우는 결실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이사 45,8; 시편 85,11). 마리아는 진정 은총을 가득히 입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시는 것처럼, 마리아로부터도 태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마리아가 구원 사업에서 각별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당신의 모상대로 회복시키기 위해 미리 안배해 두신 놀라운 결실입니다.
은총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느님과 함께할 때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이 우리의 정신과 영을 채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교부 베드로 크리솔로고 성인은 천사의 인사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전령을 망설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루만지는 손길과 거룩한 애정으로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바꿔 놓으셨고, 당신의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습니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건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녀 품에 들어오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에 대한 신뢰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은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이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잉태하고 그 뜻을 낳아 기르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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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7월 14-20일)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30)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 중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우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삼아주신 것은 우리가 성모님을 통하여 신앙의 길을 충실히 걸어갈 수 있는 모범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천사의 인사말을 듣고 마리아는 몹시 놀라면서도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라고 전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는 마리아의 태도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의 자세이며, 식별을 통해 찾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영적인 삶은 식별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되고 성장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뜻밖의 일을 당하기도 하고, 예상하지도 못한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 기도하는 사람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식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은총의 열매를 맺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은 작은 어려움에도 세상을 탓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호들갑을 떨지요. 어떤 이들은 신통한 해결사들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시편은 노래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우리는 기도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곰곰이 주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사랑을 맛보고,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부터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응답은 곰곰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한 기도의 열매입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화’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은총의 열매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는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함께해 주셨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게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곰곰이’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그 뜻에 온전히 자신을 일치시키신 성화의 모범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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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7월 21-27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

사람들은 ‘종’이라는 낱말을 잘못 알아듣습니다.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을 당신 자신의 목적대로, 그들을 돌보거나 사랑함 없이, 부려 먹는 것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당신의 아들을 낳으라고 분부하시는 하느님이 결코 위대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말은 신앙 안에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충실히 섬기는 자세를 말합니다. 마리아의 이 응답은 맹목적 순종이 아닌, 하느님의 힘과 크신 계획에 온 삶을 바친 자발적인 응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허위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이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존재임을 표현합니다.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것은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를 때에도 종처럼 자식을 받들어 기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종이 되어 늘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이루어 주려 애씁니다. 
시편에서는 “보소서, 종들의 눈이 제 상전의 손을 향하듯, 몸종의 눈이 제 여주인의 손을 향하듯 그렇게 저희의 눈이 주 저희 하느님을 우러릅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라고 노래합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은 늘 주인의 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인의 손길에 따라 움직여야 충실한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성모님의 응답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고, 성모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자발적인 동의로부터 예언자들이 예고한 ‘종’(이사 42,1; 50,4; 52,13 참조)과 ‘외아들’(히브 1장 참조)이 될 분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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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7월 28일-8월 3일)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라는 화가가 그린 ‘성전에서 발견된 그리스도’라는 그림은 루카 복음 2장 41절부터 소개하는 예수님의 유년 시절 한 사건을 독특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그림에는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을 섬세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갔던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성전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사흘 길을 찾아다니고서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였으니 이 가족의 상봉은 기쁜 일만은 아니었겠지요. 성모님은 예수님께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하고 나무라고,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대꾸하는 모습이 그림에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가정을 시련과 불화도 없이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림에 나오는 성가정의 모습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애환과 애증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성가정을 이루는 일은 어느 가족에게나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 기르는 일은 성모님과 요셉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견디어 내는 고통과 감당해 내야 하는 희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내셨는지를 루카 복음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라는 말은 성모님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성심을 말합니다. 믿음의 길은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식별하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갈 때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축복을 열매 맺습니다.
<‘성전에서 발견된 그리스도’ 그림 묵상: https://blog.naver.com/sonyh252/22333579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