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성인 이야기
대중형보다 생활밀착형인
수호성인들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우리네 삶에는 그다지 보편적이거나 대중적인 관심사 영역은 아니지만, 좀 더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부문도 있다. 그리고 교회에는 그러한 부문에서 각별한 기능을 하는 성인들이 있다. 이를테면 청소년, 가출인, 여행자들을 위한 수호성인들이다.

청소년과 신학생의 수호자 성 가브리엘 포센티(축일 2월 27일)
20240624114703_1808929580.jpg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19세기에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라던 중에 그 누나마저 잃는 아픔이 있었지만, 성인은 성격이 차분하고 사려 깊으며 착하고 붙임성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 또한 지성적이고 능력이 뛰어나며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이는 아이였다. 그 위에 신앙심과 성모님을 향한 신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까지 갖춘 아이였다.
25세 때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한 성인은 첫 서약을 하면서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때부터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완덕을 얻고자 특별한 노력을 하며 살았다. 사소하고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삶에서도 기꺼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에 완벽하게 따르는 것이라 여기며 지냈다. 밝은 성품, 기도하는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고자 하는 열망이 성인의 일상에서 빛을 발했고, 그리하여 길지 않은 수도 생활에서도 높은 덕의 경지에 이르렀다.
성인은 6년 남짓 수도 생활을 하면서 사제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31세 되던 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성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나중에 역시 성인이 된 젬마 갈가니가 성인의 무덤을 방문하여 전구를 청하며 기도함으로써 치유되는 일도 있었다.
교회는 품행이 올바르고 신심이 돈독한 젊은이의 이상적인 모범이었던 성인을 청소년, 그리고 수도회 수련자들과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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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들의 수호자 성녀 알로디아(축일 10월 22일)
성녀 알로디아와 성녀 누닐로 자매는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슬람의 탄압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던 9세기에 이슬람교도 아버지와 그리스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잘 키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가 재혼한 사람이 또한 이슬람교를 믿는 남자였다. 새아버지는 의붓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며 학대했다. 진즉에 동정녀로서 하느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 원해서 결혼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성녀와 언니 누닐로는 새아버지의 학대와 탄압을 피해 같은 신앙을 가진 사촌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의붓아버지는 두 자매의 가출을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자매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참수형을 당한 뒤, 자매의 시신은 짐승들이 뜯어 먹도록 내버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신비로운 빛이 나타나서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시신을 보호했다. 결국 두 자매의 시신은 어느 우물에 안치되었다. 그때부터 그 우물의 물은 치유의 능력을 지닌 것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의붓아버지의 학대와 탄압을 피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성녀는 본의 아니게 집을 떠난 이들, 특히 가출 청소년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여행하는 이들의 수호자 성 크리스토포로(축일 7월 25일)
20240624114427_1812823124.jpg3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성 크리스토포로는 로마 황제 데키우스의 박해 때 쇠몽둥이 매질을 당하고, 화형을 받고, 화살을 몇 차례나 맞고도 죽지 않아, 결국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께 기도해 얻은 아들이라는 성인은 기골이 장대하고 힘센 청년으로 성장하자,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용감한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겠노라 다짐하고 주인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에 악마가 십자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은수자에게서 그리스도께 충성하라는 권고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성인은 자신의 신체적 이점을 살려서 물살이 거센 강에서 사람들이 무사히 건너도록 돕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자기보다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를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는데, 그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끝내는 힘이 달려서 강을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당황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 성인에게 그 아이가 말했다.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짊어지고 있다. 나는 네가 찾아 마지않던 세상의 창조주이며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어깨에 메고 간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고, 험한 강을 건너는 길손들이 안전하게 건너도록 돕는 삶을 산 성인은 교회에서 여행자와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거나 전염병이 돌 때면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무사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