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곁에 계셨고, 항상 저를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며, 넘어질세라 흔들릴세라 항상 어루만져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레지오 단원 생활도 어언 35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니 모든 순간순간이 은총이었고 주님 이끄심이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내가 천주교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 스스로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리고 쉬고 있을 무렵, 신부님께서 부르시어 구역장을 맡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제가요?”라며 너무나도 어이없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나왔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불려 가는 순간 강하게 머리를 스치는 한마디 ‘내가 무엇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쌉니다.
신부님께 대답을 드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앙적으로 새내기인 내가 우리 반원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부터 레지오를 비롯하여 각 단체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처음 레지오에 들어가 우리 쁘레시디움이 청소 당번일 때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빗자루를 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성당 청소를 깨끗이 하는 형님들, 단원 가족이 하느님 품 안으로 갔을 때 돌아가신 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함께 모여 난생처음 첫 연도를 바치며 눈물을 펑펑 쏟았던 그날, ‘이것이 하느님 사랑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레지오를 끝까지 하리라’ 마음먹은 그때가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 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 마음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립니다.
새로운 본당에서의 시작
우리 본당에서 우두성당이 신설 본당으로 분리될 때, 우리 성실하신 동정녀 Pr. 단원 9명 중에 한 사람만 남기고 8명이 신설 본당으로 왔습니다. 신부님께 허락을 받은 우리는 1999년 7월, 새 본당에서 성실하신 동정녀 Pr.으로 레지오를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의 모후 Pr.을 분가시켰습니다.
신부님께서 꾸리아를 세워 주시고,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열심히 기도하고, 수녀님이 안 계신 신설 본당이라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봉사하였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새 단원들이 들어오고, 또다시 우리 쁘레시디움은 자리 잡은 5명만 남겨두고, 새로 시작한 단원 4명과 저와 함께 5명이 애덕의 모후 Pr.으로 분가하였습니다.
성실하신 동정녀 Pr.에서 3곳의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졌고, 모두 열심히 하는 중에 모체인 성실하신 동정녀 Pr.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원 3명만이 남아 회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그 당시 꾸리아 단장으로 있던 저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애덕의 모후 Pr.에서 저와 함께 4명이 모체인 성실하신 동정녀 Pr.으로 합류하여 함께 기도하며,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성실하신 동정녀 Pr.을 새로이 튼튼하게 자리 잡게 했습니다. 지금은 3곳 쁘레시디움 모두 다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실하신 동정녀 Pr.은 지난해 단원들의 성화를 위해 매달 성지순례를 가기로 계획하고, 배론성지를 시작으로 죽산, 풍수원, 서소문, 절두산 등을 다녀왔으며, 레지아에서 하는 단원 교육을 1차부터 6차 교육까지 강릉, 속초 등을 멀다 하지 않고 모두 참석하였으며, 성모님의 군단으로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순례의 길
올해 5월 춘천 평화의 모후 레지아에서는 평의원 피정을 한티 성지에서 하기로 정했습니다. 항상 빡빡한 일정으로 해 오던 교육, 연수, 피정 등에서 벗어나 이번 피정 프로그램은 ‘쉼’을 통하여 하느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첫째 날 치유의 음악 피정에서는 예수님 안에서 나 스스로 치유되는 행복함을 느꼈으며, 둘째 날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순교자의 묘역을 돌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겸손의 길을 걸을 때도 앞서가는 일행을 놓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길을, 지금은 양탄자(?)를 깔아 놓으셨지만, 그 옛날 우리 순교자들이 이곳으로 숨어 들어올 때는 첩첩산중 길도 없는 곳을 나무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숨어들어오셔서 신앙을 지켰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고 가슴속의 그 뭉클함을 어이 글로 표현하겠습니까. 내 신발 안으로 들어온 작은 돌멩이들, 흙들로 발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어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리. 겸손의 길을 걸으며 아프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바쳤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김수환 추기경님 생가’를 방문하여 스테파노 경당에 들어섰을 때 제대 앞 액자의 추기경님 얼굴 옆에 “바보야”... 그래 “나는 바보야” 나를 내려놓고, 비우고 또 비우고 용서하고 사랑하자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이번 한티 성지로 초대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사랑 나의 주님 사랑합니다. 나의 사랑 성모 어머님. 어머니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끄소서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