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른 봄에 옮겨심은 딸기가 올해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딸기를 맛보여 드리고 있다. 마트에서는 겨울부터 이른 봄에나 판매하는 딸기를 밭에서는 6월이 되어서도 맛볼 수 있다니 너무 신나는 일이다. 사실 계절 음식으로 치면 지금이 제철인 것을,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철을 모르고 먹을 수 있었다. 하우스 딸기에 비해서 씹히는 딸기 씨가 더 건강한 느낌이다.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실행 사항으로 ‘텃밭 가꾸기’도 권고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반응을 보게 된다. 어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보내며 고개만 끄덕이는 반면에, 오히려 어린이들은 꼭 해봐야겠다는 각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분에라도 작물을 심어서 돌보고, 식탁과 연결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해보자는 것인데, 어른 참여자들은 설득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이미 편리함에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싼 값으로 구할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함을 감수해 가며 어렵게 돌보는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볼 때, 이 말인즉슨 우리가 이미 돌보는 감수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으로 다가온다. 돈만 있으면 된다는 논리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서 돌본 것을 수확하는 그 기쁨은 아예 잊고 살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청소년들은 ‘뭐라도 해보겠어요’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꼭 해보겠다는 결의를 볼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의 마음 안에 ‘희망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어른들이 생각할 때, 아직 현실을 몰라서 갖는 태도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청소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녀님, 제가 집으로 돌아가서 우리 가족 다섯 사람과 우리 반 친구들 스무 명에게 말하면, 벌써 스물다섯 사람이 위기를 의식하고 희망을 갖게 돼요. 그리고 그 스물다섯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면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빨라질 수 있을 거예요.”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외침이었다.
그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더 일관성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왜 우리들에게는 ‘싸우지 말아라’ ‘착하게 살아라’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라’라고 말하면서 어른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나요? 왜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나요? 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돕지 않고, 말리지 않고 있나요? 오히려 뒤에서 무기를 팔아 전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어른들의 미래에 우리들이 있기는 한가요?”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어른들의 이상행동을 보면서 어른들의 말을 듣고 싶을까?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코로나가 심했었던 지난 2020년 나는 고등학교에서 환경 수업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온라인 수업을 하던 어느 날 한 학생의 얼굴이 보이는 화면 뒤로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마침 ‘음소거’를 해제한 상태였기에 어머니 음성을 나와 모든 학생이 듣게 되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 수녀님이네. 얼른 화면 끄고 영어단어 외워.” 그러자 반 학생들이 채팅창에 ‘누구야, 음 소거해!’라고 글을 올리고, 그 학생은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이 상황이 정말 슬펐다. 나도 어른이고, 학생의 어머니도 어른인데, 어른들이 자녀 세대에게 올바로 가는 길을 제시하면서도 각각 다른 방향을 말하고 있어 오히려 불안해하고, 미안해하고, 혼란스러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영어, 수학이 중요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지, 어떻게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 좀 더 멀리 바라보며 오늘을 선택하도록 가르치면, 어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온 우주에 넘치는 하느님의 숨, 하느님의 바람을 타도록, 생기를 찾도록,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교황님께서도 찬미받으소서 160항에서 이렇게 물으셨다.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모든 어린이의 마음을 대변한 이 말씀은, 그 어떤 명품 메이커나 편리함이 아닌 살고 싶은 희망을 향하고 있어 더욱 간절하게 들려온다.
기후 변화에서, 기후 위기로 의식이 바뀐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기후 재앙이라고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의 암울함 안에서 우리는 시대정신을 찾기보다 나의 안위를 걱정한다. 숱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 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한 자기 사명으로 충실하게 열매 맺고 있는 딸기를 보며, 이 불안한 시대에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열매 맺음은 무엇일까? 먼저 희망의 씨앗을 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