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방학 기간이면 생태영성의 집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생태신앙 캠프를 진행한다. 갈수록 더위가 심각해 에어컨을 켜지 않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지만,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여느 해처럼 아이들과 한참 캠프를 하던 어느 날,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담당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023년도에 새만금에서 잼버리가 있었고, 장마로 해창 갯벌에 준비된 야영장 상황이 안 좋아 행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남은 기간 동안 우리 생태영성의 집에 한 팀을 머물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어린이들이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어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023년 11월 6일에 잼버리가 있었던 해창 갯벌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주최로 갯벌 복원 기원 미사가 있었다. 우리 공동체도 이 미사에 참례하였는데, 평신도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사제들이 300여 명 이상 참례하였다. 미사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 멸종의 위협을 받는 피조물, 특별히 새만금에 있는 피조물들의 보호를 위해 기도했고, 또한 수라 갯벌에 신공항을 짓겠다는 정부의 결정에 대한 철회를 위해 함께 소리를 모았다. 미사 후, 참석자들은 공항을 짓게 될 장소인 수라 갯벌로 향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철새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절경을 만날 수 있었다.
새만금 복원 기원 미사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자연과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영화 ‘수라’가 2023년 6월에 개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황윤 감독이 7년 동안 작업하였고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과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20년 넘게 노력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를 관람하려던 나는 상영관을 찾기 어려웠다. 우리는 황윤 감독과 직접 연락을 취한 후, 이 영화를 상영하는 주최자가 되어보기로 하고, 강화읍에 있는 유일한 극장인, 작은 영화관을 대여해 함께 영화를 보자고 인근에 있는 신학교와 수도회들을 초대하였다. 신부님들과 신학생들, 다른 수도회 수녀님들과 신자분들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생태환경을 살리려면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대변해야
‘수라’는 비단에 수를 놓는다는 뜻이다.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로 우리 지구의 바다를 정화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만금 갯벌’에서 이제 마지막 남은 생명의 자리를 감독은 필름을 통하여 너무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신 한 할아버지께서는 “아,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이 아름다움에 무관심했던 제가 죄스러웠습니다. 이들을 알게 된 이상, 꼭 지켜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영화에서 갯벌은 정말 많은 생명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처럼 여겨졌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물을 막아, 더는 바닷물을 만날 수 없었을 때 갯벌은 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많은 생명들을 품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전쟁 중 굶주림 속에 있으면서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처럼 갯벌은 자기 품으로 생명을 품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라고 다독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갯벌의 소리를 누군가가 들었다. 바로 시민감시단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이들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를 자료로 남기고, 세상에 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군기지의 공항 확장을 위해 그나마 살아 있는 이 갯벌마저 막는다는 결정으로 정말 안타깝게도 해수 유통이 어려워지고 있다. 32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떤 발전도 볼 수 없었고, 누구도 이로움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나마 남아 있는 수라 갯벌마저 활주로로 내놓는다는 결정에 나는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생태환경을 살리자고 흔히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을 나열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위해 선택하는 많은 일들, 다른 생명과 사람들, 땅과 바다를 죽이는 일이었음을. 만약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태초의 ‘잘 다스려라’ 하신 말씀 안에서 이들을 정말 살리려는 마음으로 함께 걷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위해 대변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함께 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