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
엘리 사제의 아들들은 성품과 행실이 불량했습니다. 그들은 대사제인 아버지의 후광으로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하느님을 알아모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온에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의 제물을 빼앗고 백성들에게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기 일쑤였으며, 만남의 천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잠자리를 가진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이에 엘리가 아들들을 꾸짖었습니다. “어쩌자고 너희가 이런 짓들을 하느냐? 나는 너희가 저지른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고 있다. 내 아들들아, 안 된다! 주님의 백성 사이에 퍼지는 고약한 소문이 나한테까지 들리다니!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중재하여 주시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그를 위해 빌어 주겠느냐?”(1사무 2,23-25)
엘리는 아들들의 악행을 간과하지 않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견책이 너무 약했던 것일까요?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견책에도 그들은 조금도 개선의 정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과 달리 어린 나이에도 사제들이 입는 아마포 에폿을 두르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진지하고 열심히 임했던 그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답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
한편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주년 제사를 드리러 실로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그때마다 사무엘이 입을 예복을 지어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엘리 사제는 한나가 바치는 예물을 대신하여 하느님께서 한나에게 후손을 주시어 갚아 주시기를 기도하며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과연 한나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습니다. 아들 하나를 바친 한나에게 하느님께서는 다섯 배로 갚아 주신 것입니다.
엘리의 집안에 대한 하느님의 단죄
이제 많이 늙어버린 엘리 사제는 아들들의 비행을 꾸짖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비행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아들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한 엘리를 그 집안과 함께 단죄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바치라고 명령한 제물과 예물을 무시하느냐? 너희는 자신을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모든 예물 가운데 가장 좋은 몫으로 살찌웠다. 그렇게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 나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들은 나도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지만, 나를 업신여기는 자들은 멸시를 받을 것이다. 이제 그때가 온다. 내가 너의 기운과 네 조상 집안의 기운을 꺾으리니, 네 집안에는 오래 사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1사무 2,29-30)
“그렇게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엘리가 자식들의 행동을 바로잡지 못한 죄를 분명하게 물으시고 그 책임에 대해 벌을 내리시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엘리를 대신하여 하느님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행동할 대사제를 따로 세울 것이고, 이제 엘리 집안이 그 집안에 간청하여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비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경쟁자가 이스라엘에 내려진 온갖 복을 누리며 성소에서 봉직하는 것을 바라 볼 것이다. … 나는 믿음직한 사제 하나를 일으키리니, 그가 내 마음과 생각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내가 믿음직한 집안을 그에게 일으켜 주고, 그가 나의 기름부음받은이 앞에서 언제나 살아가게 하겠다. 네 집안에 남은 자는 누구나 그를 찾아가 푼돈과 빵 한 덩이를 빌면서, 제발 사제직 한 자리에 붙여 주어 빵 조각이라도 먹게 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1사무 2,32-36)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다
하느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무엘을 하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인지 모르고 엘리 사제에게 찾아갔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보고 자기가 부른 적이 없으니 돌아가 자라고 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이 세 번째로 찾아오자 그제야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습니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1사무 3,9) 다시 잠에 든 사무엘이 하느님을 부르시자 사무엘은 엘리가 시키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이 말씀은 수많은 성소자들의 마음을 실제로 뒤흔든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생 때 참가한 성소피정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내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앞서 엘리 사제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 실제로 이루실 것이라 하시며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리에게, 그의 죄악 때문에 그 집안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일러주었다. 그 죄악이란,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책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 집안에게, 그 집안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는 영원히 속죄받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였다.”(1사무 3,13-14) 엘리 사제는 그 아들의 죄상을 알고 그들을 책망한 일이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고, 사무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심으로써 사실상 사무엘을 엘리의 후계자로 세우실 것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엘리 사제 집안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은 잘못된 자녀들의 행동을 두고 아파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분명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어긋난 길을 걷는 자녀들에 대해 그저 비난이나 책망을 몇 번 행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맹자의 어머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 모니카, 가깝게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의 아버지가 보인 것과 같은 정도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할까요.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한 호소, 또 더 엄하고 더 무서운 질책과 책망과 견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승복하는 엘리
사무엘은 아침이 될 때까지 자리에 누워 있다가 주님의 집 대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었던 하느님의 엄청난 말씀을 엘리 사제에게 알리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숨기면 하느님께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엘리의 말에 사무엘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사무엘로부터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 전해 들은 엘리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니, 당신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하시겠지.”(1사무 3,18)
이후 사무엘은 하느님을 가까이 뵈오며 자라났습니다. 그에게 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거듭 나타나 말씀하셨고, 그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이 하느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는 자신을 단죄하는 하느님께 불평도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승복하는 엘리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엘리 사제를 보며 생각해 봅시다. 나 자신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그리고 나는 그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