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전례공간’
그리스도교 입문의 첫 장소
세례 샘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 천주교회의 성당들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은 세례대나 세례 샘은 유럽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필수 전례 설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서 세례를 받으며, 세례 후에는 이곳을 보면서 자신의 세례를 상기하고 세례 때 했던 하느님과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곧 세례대는 성수와 함께 그리스도교 입문의 첫 발자국인 세례를 상기하게 하여 모든 죄를 사함을 받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으며, 그분의 자녀로서 살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되새기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이 세례대의 변천 과정과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다교의 정결례와 사도 시대의 세례
저명한 성서고고학자인 롤랑 드보의 ‘구약시대의 종교풍속’에서 정결례와 성결례에 대한 의미를 잘 설명합니다. “고대인의 사고 세계에서는 부정한 것과 거룩한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개념들이다. 그들은 둘 다 신비한 힘, 곧 공포감을 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들에 접촉하면 그 무서운 힘이 효력을 발생하고, 그것들과 일단 접촉한 것이 무엇이든지 이 세상에서 금기목록에 들어갔다.”
곧 부정한 것에 대한 접촉은 당연히 정화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신과의 접촉도 성결례를 통해 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참조. 레위 11-26장). 그 이유는 신과의 접촉에서 얻어진 거룩함은 일상생활과 구별된 특별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상생활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런 특수 상황에서 밖으로 나와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때 사용하는 “정화의 물”(민수 19,9)은 “향백나무와 우슬초와 다홍색 천”(민수 19,6)을 암소를 사르는 불에 넣어 태운 다음에 그 재(히브 9,13 참조)를 모아두었다가 생수에 혼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마르 1,4)를 선포하였고,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요한 3,5)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 시대에서 세례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로마 6,3)되게 하며,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도록 하고, 세례 때 받아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세례 때 받은 영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라고 외치도록 합니다. 곧 “구약의 정결례를 훨씬 뛰어넘는 신약의 세례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 신비의 힘으로 더 큰 효과”(그리스도교 입문 총지침, 6항)를 냅니다.

다양한 형태의 세례 장소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보장한 밀라노 칙령(313년) 이후에 그리스도교는 성당과 함께 세례당을 건설했는데, 이 형태는 ‘씻음’을 상징하는 로마의 공중목욕탕과 ‘죽음’을 상징하는 영묘인 마우솔레움을 본떴습니다. 세례 샘은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는 곳으로 그 의미에 맞추어 다양한 상징을 드러내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초기의 세례당은 천상 예루살렘의 묵시적인 상징인 “네모반듯”(묵시 21,16), 곧 사각형이었으나, 440년경 완공된 로마의 최초의 세례당인 성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세례당은 8각형이고, 5세기경의 이스라엘의 쉬브타(Shivta) 성당의 것은 십자형이며, 4세기 시리아의 데이르 세타(Deir Seta)는 6각형이었고,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대성당의 세례당(14세기)은 원형입니다. 
원형은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다시 태어남(요한 3,3)을 나타내고, 6각형은 한 주간의 여섯째인 금요일과 아담이 창조된 날에서 오는 죽음과 그리스도의 모노그램인 ☧의 여섯 꼭지점을 표현하며, 8각형은 창조의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인 여덟째 날로서 ‘주님의 부활’을 의미하고, 유스티노 성인은 베드로 서간의 “노아는 다른 일곱 사람과 함께 지켜주셨습니다”(2베드 2,5)를 언급하며 노아를 포함한 여덟 명은 구원의 “여덟째 날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세례당, 세례반, 세례대, 세례 샘?!
세례당(洗禮堂)은 세례 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따로 마련된 성당의 독립된 방 또는 건물을 말합니다. 세례반(洗禮盤)은 욕조처럼 물을 담는 넓은 바닥을 만든 것이고, 세례대(洗禮臺)는 세례를 편하게 하는 높이를 위해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세례수를 담는 그릇을 올려놓은 형태를 말합니다. 세례대와 “세례 샘”(洗禮所, baptismalis fons)은 교회법 제858조에 기반으로 ‘유아 세례 예식 지침’ 10항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여기서 세례 샘을 모든 본당의 의무 시설로 말하고 있습니다.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347-395년)가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 전체의 국교로 선포하면서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성인 영세자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7세기 무렵에는 유아 세례가 일반화되면서 독립적인 건물인 세례당이나, 성인이 들어갈 정도의 큰 세례반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례반은 유아 한 명이 물에 담길 정도로 작아졌고, 받침대를 두어 세례를 편하게 만든 세례대가 유행했지요.

세례 샘이나 세례대를 어디에 설치하는 것이 좋을까? 
큰 성당의 경우에는 따로 세례를 위한 경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개, 성당 입구나 제단의 한쪽에 세례대를 둘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세례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라는 의미 때문에 성당 출입구 안이나 이와 가까운 곳에 두었는데, 이 경우에 성당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세례대나 세례반을 볼 수 있어서 전례가 시작되기 전에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것을 제단의 적당한 자리에 배치한다면 독서대와 제대에서 거행되는 성체성사와 세례성사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으며 회중 전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설치하든 “세례 샘, 곧 세례수가 솟아나거나 세례수를 준비해 둔 장소는 세례성사만을 위하여 유보된 자리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자리의 품위를 갖추어야”(그리스도교 입문 총지침, 25항) 합니다. 일 년에 몇 번 하지 않는 세례 샘은 실용 차원에서 필요성이 별로 없어서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신에 세례성사를 거행할 때 사용하는 용기는 품격 있고 상징성이 포함된 것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는 영원성을 의미하는 조가비 형태의 용기를 유아 세례 거행에서 세례수를 유아의 머리에 붓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새 세례 샘 축복 기도는 세례 장소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줍니다. “이 샘에서 태어나는 백성들이 믿음으로 약속한 것을 행동으로 지켜 내고 주님의 은총으로 시작한 것을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