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나와 함께 좀 쉬자”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혼자서 조용히 단 하루만이라도 누구의 방해도 없이 푹 쉬고 싶다.” 대부분 사람이 공감하는 말입니다. 많은 현대인은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신부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성당 옆 아파트가 사제관인 신부님은 저녁 늦은 시간에 한 초등학생과 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합니다. 전에도 몇 차례 오가는 길에 눈인사를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방과 후 여러 개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지친 얼굴로 집에 가는 길이었나 봅니다. 아이는 신부님과 눈이 마주치자 대뜸 “아저씨,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은 고달프겠지요?”하고 물었답니다. 신부님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이에게 미소만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일상의 복잡한 일을 떠나 잠깐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진정한 심신의 휴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본당에 있을 때 가끔 조용한 곳에서 혼자 피정할 곳이 있냐며 질문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실 일만큼 휴식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일에만 잡착한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고 만족한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은 장수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80세인데도 원기 왕성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은 결코 쓸데없는 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앉을 수 있는 곳에서는 앉고, 누울 수 있는 곳에서는 누워서 쉽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저녁에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해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걱정하고 생각한들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고, 떨쳐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 처칠은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입니다.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에디슨과 처칠, 두 위인의 말은 휴식의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잘 쉬는 사람이 일도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어떤 회사는 점심식사 후 일정한 시간은 커튼도 치고 불을 꺼서 아예 모든 사원들이 쉴 수 있게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낮잠을 자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이 인간과 만물에게 축복 주시는 거룩한 날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을 여행하다가 금요일 저녁 해가 떨어지면 다음 날까지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심지어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멈출 때가 있어 나도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안식일을 지킵니다. 실제로 안식일에는 모든 상점과 관공서가 문을 닫아 여행객들에게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천지창조를 마치고 제7일에는 휴식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창세기 1장) 이처럼 안식일의 근원은 하느님이며, 하느님이 인간과 만물에게 축복을 주시는 날이며, 거룩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선택하신 자녀가 하느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sabbath)’이란 말은 ‘멈추다, 쉰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안식일에 일을 쉬는 것은 십계명의 네 번째 규정이기도 합니다. 유다인의 안식일은 지금의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입니다. 안식일에 유다인들은 축제일로서, 기도를 하면서 성경, 특히 모세의 율법을 묵상했습니다(신명 5,13-15 참조). 
유다교에서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을에서는 회당장이 나팔을 세 번 불어 안식일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안식일 날 열심한 유다인들은 종종 함께 식사하며 특별한 두 덩어리의 빵을 굽고 축제의 표시로써 포도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유다교의 랍비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29가지의 행동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은 엄숙한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갔고 점심 식사 후에는 랍비들의 토론을 들었습니다. 토요일 해 질 무렵에 나팔을 한 번 불어서 안식일이 끝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더욱 세분화되어 복잡하고 많은 규정이 부과되었습니다(마태 12,1-8).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루카 6,6-11). 예수님은 자신을 고발하는 자들에게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착한 일을 하는 게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게 옳으냐? 사람을 살리라고 했느냐? 죽이라고 했느냐?”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엄격한 외적 관습에 반대하시지만(마태 12,2-8), 안식일을 없앤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루카 4,16), 올바른 해석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라도 선을 행하고 형제적 사랑의 의무를 강조하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휴식은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 때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준으로 하여 일요일을, 주님의 날(주일)로 지냅니다. 주일(主日)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를 미리 맛보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주일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나고 현재화하는 은총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은 자주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적한 곳’이란 사람들과 일을 잠시 잊고 떠날 수 있는 장소와 상태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쉬는 것은 재충전뿐만 아니라 중요한 이유가 또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찾게 해 줍니다. ‘한적한 곳’은 바로 고요와 침잠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멈출 때 ‘자기 자신과 만나는 고요한 장’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눈을 감고 기도할 때 고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멈춤은 믿음과 창조의 행위입니다. 이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나와 함께 좀 쉬자” 그렇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휴식은 바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