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골길을 달리던 44번 버스에 한 청년이 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두 남자가 타는데, 그들은 노상강도로 돌변하여 승객들의 금품을 갈취한다. 그리고 여성 운전사를 성폭행하려고 끌어내린다. 하지만 승객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고, 그 청년만이 강도들을 저지하려다 흠씬 두들겨 맞고 흉기에 찔린다. 성폭행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여성 운전사는 승객들을 말없이 쳐다본다. 뒤늦게 청년이 버스에 타려 하지만 운전사는 청년을 버려둔 채 버스를 몰고 떠나 버린다.
청년은 할 수 없이 다른 승용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길 한쪽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경찰의 무전 보고를 듣게 되는데, 운전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으며 사고 차량은 44번 버스라는 것이었다. 청년은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2001년에 제작된 데이얀 엉 감독의 단편영화 ‘버스 44’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2000년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울프 모리슨 외 두 명의 연구원은 직장 내 침묵에 관한 연구를 했다. 이들은 컨설팅 회사와 금융 기관, 언론사, 제약사, 광고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정규직 근로자 40여 명을 인터뷰하여 ‘직장에서 문제 제기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와 ‘문제 제기를 가장 피하는 영역’에 대해 조사하였다. 그 결과 직장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동료들의 부정적 시선에 대한 염려, 누군가를 당황스럽게 하거나 언짢게 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움, 또한 문제를 제기해도 다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이었다.
그리고 직장에 제기하고 싶은 문제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이나 상사의 월권행위와 같은 조직 차원 면에서부터, 자신의 실수와 같은 개인적인 면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해당할 정도로 다양했다. 게다가 조직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조차도 말하기를 꺼렸는데, 놀라운 것은 응답자 모두가 문제를 제기하려다 주저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조직원들은 발언할 의견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할 의견이 있음에도 일부러 발언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조직 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는 상태’를 ‘조직 내 침묵’이라고 명명하였다.
조직 내에서 여러 이유로 침묵이 만연한 상태 ‘조직 내 침묵’
물론 침묵이 늘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 침묵해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을 조용히 돌아볼 때도 침묵은 필요하다. 또 서로 자기주장만 하여 소통이 힘들 때 잠시 쉬어가기 위해, 혹은 집단이나 상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침묵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만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의견조차도 말하지 않는 조직 내 침묵은 조직원 간의 소통 약화로 이어져 발전을 위한 토론도 제한되니 관리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게 된다. 급기야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묵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하니 조직 내 침묵은 조직에 치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말을 아끼고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어, 잘못하면 침묵이 당연시될 수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인 A자매는 이사를 했는데, 전 본당에서도 꾸리아 단장을 역임하는 등 열심히 단원 생활을 했던 터라 이사한 곳에서도 빠른 시간에 쁘레시디움 간부가 되었다. 꾸리아에 참석한 그녀는 자신이 있었던 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여서 놀랐다고 한다. 상급평의회임에도 불구하고 평의원들의 발언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빨리 회의를 마치고자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간을 두고 말없이 참석하다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사업 보고 논평뿐만 아니라 모호한 지시에 대한 질문 등 적극적으로 발언을 했다. 그런데 그 후 그녀에게 들려온 소문은 그녀로 인해 꾸리아 회의가 길어지고 잘난 체를 해서 못 봐주겠다는 등의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그 소문의 충격으로 저는 말문이 닫혀 요즘은 발언을 잘하지 않습니다. 이런 제가 달란트를 묻어두는 사람처럼, 맡겨진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교우들의 그런 뒷담화와 부정적 눈빛을 견디기가 쉽지 않네요. 요즘은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침묵하고 있는데 답답하긴 합니다. 문제는 적극성만 줄었는데도 저도 모르게 레지오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지 한 번씩 탈단을 생각하는 저를 보기도 한다는 겁니다.”
자기의 의견 발표해 조직체가 활성화되도록 힘껏 공헌해야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원들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는 일’(교본 388쪽)이기에 ‘(회합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교본 388쪽)여야 한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똑같이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해야’(교본 191쪽)하며 ‘단원들의 ‘공정한 논평’은 환영해야’(교본 192쪽) 한다. 평의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의회가 ‘레지오의 업무와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자유롭게 토의하는 장소’(교본 239쪽)인 만큼 ‘모든 평의원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발언해야’(교본 240쪽) 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발언은, 마치 쇠사슬의 고리가 다른 고리를 끌어당기듯이, 다른 사람들도 발언하도록 이끄는 도화선의 역할’(교본 389쪽)을 하여 전체의 침묵이 때때로 소수의 웅변에 의하여 가려지고 마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다만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되어 있는 발언은 파괴적인 침묵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교본 241쪽)라는 것을 명심하여 ‘도전적인 어조를 띤다던가 간부들에 대한 존경심을 저버리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교본 192쪽).
회합이나 평의회에서 발언하다 보면 나의 무지가 드러날까봐 두려운가? 혹은 나의 발언으로 상대가 부끄럽게 여기거나 도전으로 여길 수 있다고 걱정되는가? 뿐만 아니라 발언할 때는 논리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아가 간부나 상급평의회에서 질문이나 문제를 말하는 것은 레지오의 화합을 깨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교본에 ‘모든 평의원은 단순히 출석해서 남의 발언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여 조직체가 활성화되도록 힘껏 공헌해야 한다’(교본 240쪽)라고 되어있다. 이는 쁘레시디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권운동가였던 루터 킹 목사의 다음 말은 침묵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아닌,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주저하는 마음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레지오가 단원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나 요구하고 있는 용기가 바로 이 때에 그 일부나마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교본 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