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바로 지금
이설주 소화데레사 전주교구 효자동성당 성실하신 모후 Pr.

2021년 7월. 협조단원으로 활동한 지 4년째 되던 해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으로 진행되던 레지오 회합이 대면 회합으로 잠시 열리던 때 당시 서기를 맡고 계시던 지금의 단장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손자를 돌보러 가야 하는데 레지오에 할머님들만 남아 있어서 잠시 서기를 대신해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2달이라는 시한부 행동단원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할머님들을 뵙고 식사하던 날,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으로 식사 시간을 다 채웠습니다. 회의록은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서 예전 회의록을 찾아가면서 스스로 터득했고, 모르는 것이 나오면 할머님 단장님과 꾸리아 간부님들께 물어가면서 그렇게 버텼습니다. 
따라가기 바쁜 와중에 할머님 단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식사 자리에서 고맙다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연도를 바치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심란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레지오 회합이 재개되었지만 여전히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지오 회합 시간은 평일 오전이었고, 제 상황상 더 이상 평일 오전에 시간을 내기는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할머니 단장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각자 다른 레지오로 흩어질 결정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레지오 사업 보고를 떨리는 목소리로 마쳤습니다. 그날부터 좋은 방법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단장님께서 저에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할머님들께서 제 일정에 맞춰서 평일 저녁 시간으로 옮겨서라도 팀을 유지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든 전후 고령의 할머니들께서 밤에 나오신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게 “주일 미사 끝나고 하면 도와줄 수 있어?”라고 물으셨습니다. 주일에 맡은 것들이 많았고, 아직은 아이들도 어린 상황이라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레지오 도와드리기 시작할 때 돌아가셨던 할머니 단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또 남은 할머님들의 얼굴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힘들 수도 있지만 내가 대답한다면 이분들이 마지막 가시는 날에도 레지오 단원으로 떠날 수 있는 거겠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수락했고 그렇게 레지오 회합은 주일 교중미사 후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일에 주일학교 행사도 있고, 교육도 있고, 회의도 있지만 잘 조절해 가며 레지오의 서기를 맡아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활동을 결심하고 기사 교육 일정이 나오자마자 신청해서 2단계 교육까지 마쳤습니다. 
6명이 시작했던 레지오 회합은, 그 사이 할머님 세 분이 건강 때문에 장기 유고에 들어가셨지만 새로 단원이 채워져서 행동단원 10명이 되었습니다. 단원들이 모두 고령이었고 더 이상 간부를 맡을 사람도 없어서 해체까지 생각했던 저희 팀은 이제 40대인 저부터 80대 할머님들로 구성된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팀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것도 많아서 배워야 할 것들도 많지만 그때의 결정은 참 좋은 몫이었다고 스스로 토닥여 줍니다. 레지오는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하겠노라 버텼지만 모순되게도 가장 바쁘고 정신없을 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몸은 바빠졌지만 마음은 더 여유로워졌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리라 믿고 성모님께 의탁하며 제 몫을 잘 살아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