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를 시작하며
‘사무엘기’는 옛 라삐 전승에 따라 사무엘 예언자를 그 저자로 여긴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후대의 라삐들은 역대기 전서 29장 29절의 “다윗 임금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엘 선견자의 기록과 나탄 예언자의 기록과 가드 환시가의 기록에 쓰여 있다.”라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1사무 25장에서)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의 작품이 ‘나탄’과 ‘가드’를 통해 계속적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사무엘기는 원래 한 묶음이었는데, 이 책을 번역할 때 그리스말 번역자들이 ‘1,2 왕국기’로, 라틴말 번역자들은 ‘1,2 열왕기’로 (그러면서 ‘열왕기 상하권’은 ‘3,4 열왕기’로) 나누어 불렀고, 15-16세기부터는 히브리말 성경도 ‘1,2 사무엘’ 두 묶음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세 번째 책인 사무엘기는 사무엘의 출생에서 시작하여 예언자로의 부르심과 이스라엘의 구원자와 대판관이 되기까지 사무엘의 생애에 대한 기록과 함께, 여호수아 시대 이후 지파 간의 결속이 느슨해진 가운데 왕정국가로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는 ‘왕정 수립의 과정’과 판관 시대 말엽부터 사울과 다윗 왕의 치세에 이르는 ‘통일 왕국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무엘기는 실로의 계약 궤와 관련된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일종의 부록에 해당하는 부분(2사무 21-25장)을 제외하면 연대순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기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기록한 연대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자료들이 한데 모여 편집된 문학작품으로서, 특히 솔로몬 치하에서 편집되고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에 보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다윗 왕위 계승사’를 담고 있습니다.
사무엘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왕정’(王政)입니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있는데 인간 통치자는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를 서술하되 대체로 유다왕조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무엘기는 왕권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담고 있는데, 이는 왕정에 대한 후대 역사가들의 상이한 평가가 반영된 까닭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사무엘 전서 12장은 왕정을 요구한 백성이 천둥과 비로 즉각 단죄받는 사건을 싣고 있는데, 이는 왕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정이 인간적 권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권위에서 비롯하고 통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 왕조는 적지 않은 약점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항구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 후서 7장에서 전하고 있는 나탄의 예언은, 비록 역대 임금들의 개인적인 잘못에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매와 채찍의 징벌이 따를지라도,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의 왕좌는 끝까지 지켜주시면서 당신의 자애를 계속 내리시리라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 사무엘의 탄생
에프라임 산악 지방 라마에 사는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 ‘엘카나’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으니,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기고만장했던 프닌나는 해마다 실로에 제사를 드리러 갈 때가 되면 한나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그때마다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나에게 엘카나는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하며 달랬지만 한나의 슬픔은 가실 줄을 몰랐지요. 하루는 한나가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 쓰라린 마음을 안고 흐느껴 울면서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들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사무 1,11)
한나는 하느님께서 아들을 낳도록 해주시면 그 아이를 성별하여 바치겠다고 말씀드리며, 주님의 천사가 삼손의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의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서약하였습니다. 일종의 ‘나지르인의 서약’을 한 것이지요. 입술만 움직이면서 기도하는 한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제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고 나무랐습니다. 이에 한나가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1사무 1,15-16)
한나의 애절한 마음에 하느님께서 움직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엘리를 통한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1사무 1,17) 자신을 너그럽게 보아주십사 청을 드린 한나는 이제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나의 얼굴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의 도우심을 입은 한나는 드디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하느님께 구함”이라는 뜻으로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사무엘, 주님께 청을 드려 얻은 아이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한나의 아낌없는 봉헌
하느님께서 그야말로 선물로 주시는 아이를 얻어 키우는 한나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한나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이를 주시면 그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서약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까닭이지요. 이제 아이가 젖을 떼자 한나는 자신의 서약대로 그 아이를 데리고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자신의 귀여운 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아이와의 이별을 앞두었던 한나였지만 황소와 밀가루와 포도주를 챙겨가면서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사제 엘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1사무 1,26-28)
한나는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힘들었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를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 돌려드린 것이지요. 자신의 서약에 충실하며 참다운 봉헌을 이룬 한나는 이제 사제 엘리와 함께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나의 기도
사무엘 전서 2장은 ‘한나의 노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사랑하는 아들과의 생이별을 앞두었지만 위대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업적을 찬미하고 그분의 심판을 노래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제 입이 원수들을 비웃으니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없습니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하느님 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 주님은 정녕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의 행실을 저울질하시는 분이시다. …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 …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심판하시고 당신 임금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이의 뿔을 높이신다.”(1사무 2,1-10)
한나는 아이를 갖게 되기를 바라며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신 창조주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한나는 단순히 아이를 달라고만 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치겠다는 서약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이러한 서약은 하느님의 응답에 대해 참다운 봉헌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나는 아이가 주는 눈앞의 행복에 겨워 하느님께 드린 서약을 깨뜨려 버릴 만큼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한나에게서 하느님께 대한 참다운 서약, 그리고 감사와 봉헌의 정신을 배우게 되면 좋겠습니다!